교회는 지난 한 주간 특별새벽예배 말씀으로 베드로후서 본문을 갖고 말씀을 나눴는데요. 오늘 목회 칼럼은 어제(토) 새벽 말씀의 일부분을 옮깁니다.

오늘은 베드로후서 3:1-9절인데요.. “말씀의 약속을 붙들라” 라는 제목입니다. 1절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 편지를 쓴 목적을 전하는데요. 1절 뒷 부분에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라고 합니다. “진실한 마음” 이란, 원어의 의미로 순수하고, 섞이지 않는, 감춤이 없는 마음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비유해서 말하길, “환한 햇빛 속에서 이루어지는 충실한 검사를 의미한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어떤 도공이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햇빛에 비춰서 흠이 조금 이라도 있으면 깨뜨려 버리듯이 말이죠. 이렇게 충실한 검사를 통해서 나온 제품을 진실되다 말합니다.

그는 이런 진실된 마음으로 지켜야 할 것을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이란 기록된 구약의 말씀들이죠. 그리고 구주께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은 당시 사도들에게 전해진 구주의 명령과 기록된 서신들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연한데도.. 굳이 진실된 마음으로 지키라 한 것은 실은 이런 말씀들을 왜곡하고 변질시키며 공격하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공격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의심케 하고, 만물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처럼 구주의 재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말들을 한 겁니다.

저자는 이런 말씀을 왜곡하는 대적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강조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하죠. 이것은 마지막 때,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거짓된 가르침과 배교가 있을 텐데요. 이 배교의 핵심은 결국 창조주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하고, 무시하는 것에 대해 강조한 것이죠. 그 중 가장 큰 위험은 말씀을 말씀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인간은 주신 자유로 쾌락을 마음껏 누려도 되고, 가난하면 저주라 하고 돈이 많으면 축복이라고 하며.. 동성애를 정당한 신의 축복이라 말하는 수많은 배교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고, 무시하고 말씀을 근본적으로 믿지 않는 배교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런 세대 가운데 함께 붙들고 싶은 도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의 약속입니다. 저를 따라서 해 주십시오. “말씀의 약속을 굳게 붙들자”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 이 구절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취됩니다. 주님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마5:18) 하십니다.

다만 말씀이 이뤄지지 않고 더딘 것 같은 것은 우리가 그 때를 조급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선한 때에 당신의 뜻을 이루시고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모두 성취되었고, 또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중 아직 기다리고 있는 약속은 본문에서도 말씀하는 것처럼 마지막 심판 때에 구주의 다시오심, 재림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은 때를 따라 진행하고 계십니다. 단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을 사명으로 감당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의 삶 되시길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