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캘리포니아 가서 뭐해?”
어느 날, 식사 중에 막내가 6월 중순 즈음에 가게 되는 미주남침례회한인교회총회(이하 총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에 가는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막내는 총회가 뭔지, 무엇을 하는지 몰랐고, 단지 캘리포니아 가는 것 때문에 물었던 질문이었죠. 캘리포니아 가서 뭐하냐는 질문과 함께, 비행기를 타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괜찮은지, 총회 중에 특별프로그램(Universal Studio)에 유스들이 참여한다니깐, 돈이 있는지 등등 계속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씩 답하느라 시간이 제법 가더군요. 결정적으로 제게 던진 질문 하나가 갑자기 ‘멍!’ 하게 만들었는데요.
“아빠, 돈이 어디서 와?, 어디에 돈이 있냐고?”
잠시 생각하다가 “from God, 하나님이 주시지,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주시고,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해 주셔.”

대답하고 보니깐 잘 대답한 것 같은데, 그 후로 정말 하나님이 주신다고 나는 믿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from God” 진실로 하나님이 모든 것(물질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삶의 것들)을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사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며 묵상을 하는 중에 산상수훈의 말씀 한 단락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주님이 갈릴리 어느 산에서 많은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이렇게 말씀하신 구절이 있죠.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9-10)” 저는 아마도 이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호칭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의 개념으로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조상 중에 하나인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고, 사라를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그들의 오래된 관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 거룩해서 부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십계명의 3계명에 근거함) 이름을 부를 때에도 주님으로 호칭해서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그 아버지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가까이 하시며, 늘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는지를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구하는 삶이었는가 다시 물었습니다. 분명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가 찾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린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살았는가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마7:7-8). 실은 문제가 있을 때 도망가고 회피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주님께 구하기 보다 다른 도움을 더 원하지는 않았는지, 그 도움이 사람이기도 하고, 물질이기도 해서 결국 그 일로 실망하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으면서 여전히 하나님은 뒷전인 채, 모든 것을 하나님이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지냈던 제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막내의 질문 하나로 이어진 답변은(from God)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고 또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칼럼을 쓰는 이 순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고 계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인지를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롬8:28)의 바울의 증언은 결코 나와는 먼 얘기, 믿음 좋은 분들의 얘기가 아닙니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from God” 언제나 하나님이 하신다는 이 위대한 믿음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오늘은 반성과 곁들인 묵상과 함께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마음에 생각해 보는 믿음의 한 주제가 되길 바래 봅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