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Bethel Faith Baptist Church

베데스다의 역설

Author
bethelfaith
Date
2020-01-26 00:00
Views
1954


오늘 목회 칼럼은 새벽마다 전하는 말씀의 본문중에서 요한복음 5:1-9절을 중심으로 증거했던 베데스다의 치유 사건과 관련되어 묵상한 내용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의 양문(Sheep Gate)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고, 많은 환자들이(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요5:3) 있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한 가지 소망이 있었죠. 병에서 낫고 싶었습니다(요5:4). 이 소망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 중에, 38년 동안 병들어 누워지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곳에 들리셨을 때, 바로 그를 주목하며 물으셨죠.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6)” 병자는 답하길, 자신을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물이 움직일 때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간다고 답합니다(요5:7).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고 말씀하셨는데, 말씀이 선포되자, 병자는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 본문의 사건입니다.

본문의 사건에서 많은 사람들은 못의 이름인 베데스다처럼, 자비의 집(House of Mercy)에서 구원받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모두가 낫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낫는 사람은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이 움직이면 그곳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는 것입니다(요5:4). 그래서 이 소문을 믿고, 수많은 병자들이 그 못 근처에서 물이 움직이길 기다렸죠. 그러나 이 말은 단지 전해지는 말일 뿐, 그 어떤 것도 입증된 것이 없는 말입니다. 단지 신비로운 힘으로 낫기를 바랐던 많은 병자들의 마음이 담긴 신화적인(Myth) 얘기였을 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누군가 이 신화 대로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물에 들어간 단 한 사람이 치유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치유는 자비의 집에서 일어난 치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만 선택적으로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치유될 때, 먼저 들어가지 못한 2등부터 수십, 수백명이 될지도 모르는 병자들은 자비가 아니라 절망과 좌절과 고통을 겪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수십, 수백명, 아니 더 많은 사람이라도 한 번에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런 제한된 장소에서(자비의 집), 한 사람만 가끔 치유하신다면, 그것도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만 치유하신다면 이런 치유는 하나님의 자비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집은 자비의 집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과 비정함, 무자비의 집이라 불려야 마땅합니다.

이는 마치 일등지상주의, 성공과 외모 지상주의에 매몰된 이 시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을 우대하고, 최고의 학벌과 재력과 외모를 동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등이 되면 뭐든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베데스다에서 치유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병자들이 헛된 신화를 쫓아 그 곳에 몰려 있던 것처럼 말이죠. 오늘 우리도 이런 일등이 되는 신화를 쫓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이름은 자비였으나 전혀 자비가 없는 곳에, 아무도 그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38년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 또한 낫는다는 신화에 붙들려,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원망하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자비를 구했습니다. 바로 그를 주님이 치유하셨습니다. 주님은 그가 어느 정도 믿음이 있거나, 치유를 위해서는 어떤 믿음이 되야 한다거나 하시지 않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심으로 치유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거나, 우리의 능력이나 조건이 있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없는, 볼 것 없고, 상처와 아픔만 가득한 인생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고, 찾아오셨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혀 자비와 어울리지 않았던 베데스다가, 이름 그대로 자비의 집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이 임하실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베데스다의 역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은혜의 주님을 오늘도 붙들고, 바로 여러분이 은혜의 통로가 되어 은혜를 나누며 사는 믿음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