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느헤미야 강해를 시작하며
Author
bethelfaith
Date
2020-04-19 00:00
Views
349

꽤 오래 전부터 그에 대해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한참 동안 만나지 못해서 였는지.., 지난 두 달 동안 ‘팔복’에 관해 말씀을 강해하는 내내 가끔 그에 대해 생각이 났습니다. 실은 잘 알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는 어렴풋한 기억 너머에 있었습니다. 마치 서재 한쪽 구석에 꽂혀져 수년이 되도 꺼내보지 않은 책처럼. 그러다 우연히 먼지를 털며 다시 꺼낸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때 오는 전율처럼, 그는 다시 제게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제가 만난 ‘그’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실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얘기가 아니라 ‘그’와 함께 하셨던 ‘그 분(하나님)’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 우리’의 얘기입니다. 그는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닙니다. 물론 왕도 아닙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과는 약 1,400km(875마일) 정도 떨어진, 먼 타국 땅에 포로로 끌려갔던 포로들의 자녀들 중 하나입니다. 그는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주전 586년경 당시 사람이 아닙니다. 느헤미야 1:1을 보면, 그가 어떤 시대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여기, 왕인 아닥사스다는 학자들의 논의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I세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World Biblical Commentary, H.G.M. 윌리암슨). 이런 견해로 보면 이 왕은 성경의 에스더서에 나오는 에스더의 부군인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년대적으로 보면 아닥사스다 왕은주전 464년에서 424년까지 재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록대로 그의 재위 이십년이면, 약 주전 445년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느헤미야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후 약 142년 후의 사람인 것이죠.
그리고 그의 직업은 왕에게 술을 따르는 관원이었습니다(느1:1; 2:1). 그가 가진 직업은 실은 단지 왕 곁에서 시중을 드는 하인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시 술 따르는 관원은 고위 직책이었습니다(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 술 따르는 관원과 떡굽는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사건을 참조하십시오; 창40장). 왜냐하면 이 직책은 왕에게 술이 진상되기 전에 먼저 맛을 봐야 했고, 진상되는 모든 경로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였기 때문이죠. 요즘 시대로 하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경제수석, 정책 수석과 같은 장관급 역할입니다. 그는 매우 중요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민자보다 못한 포로로 끌려 간, 망국의 백성인데, 그 자손 중에 하나가, 페르시아라고 하는 당시 가장 강대한 국가 권력의 최고 핵심에 있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그에 대해 소개를 하려면 참 많은 얘기를 더 해야 합니다. 제가 느헤미야 강해를 시작하면서 잠시 ‘그’에 대해 얘기를 꺼낸 것은, ‘그’와 함께 걷는 말씀의 여정에서 ‘그’를 더 잘 이해하며, 또한 ‘그’를 믿음의 여정의 동반자로 붙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한쪽 편에 쌓아뒀던 느헤미야를 다시 꺼내며 제게 스스로 했던 질문, “왜 느헤미야일까?, 왜 다시 느헤미야 강해를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하면서,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겪었던 당시의 현실이 오늘 우리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고, 이런 현실에도 그가 걸었던 믿음의 길은, 오늘 우리가 이 시대를 견디며 살아가는 믿음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저는 이제 오늘부터 교우 여러분과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겪는 여러 현실들(Shelter in Place, etc.) 이 우리를 힘겹게 하고,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그래도 성경의 한 인물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갖고 함께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시간이 되길 기도 드립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