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세상 가운데 보내는 성령의 공동체

Bethel Faith Vison

베델믿음칼럼

네오스와 카이노스

Author
bethelfaith
Date
2019-12-08 00:00
Views
503


오늘 목회 칼럼은 지난 수요 예배때 나눴던 말씀 중에 일부를 요약해서 싣습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

이 구절에서 ‘새 하늘, 새 땅’ 에 쓰인 새롭다는 단어의 원어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새롭다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네오스(νέος)’이고 또 하나는 ‘카이노스(καινός)’ 입니다.

우선 ‘네오스’라는 단어는 시간적으로 오래된 것과 비교해 새것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단어, 뉴스가 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뉴스는 매일 새로운 것을 의미하죠. 성경의 한 구절을 예로 들면, 마태복음 9:17에 이 단어가 쓰입니다. ‘새(νέος)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이 구절의 새롭다는 단어는 ‘네오스’입니다. 이전의 오래된 포도주가 아니라 새로운, 신선한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오늘 1절에 쓰인 ‘새 하늘, 새 땅’ 에서 새롭다는 의미로 쓰인 ‘카이노스’는 어떤 의미일까요. 이 단어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을 의미할 때 쓰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말합니다. 다시 같은 구절을 예로 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마9:17의 뒷 구절을 보면 “새 포도주는 새(καινός)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라는 구절에 ‘부대’ 앞에 쓰인 단어가 ‘카이노스’ 입니다. 이 말은 단지 이전의 가죽 부대를 씻어서 담아낸 포도주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질감의 가죽부대를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고후5:17로 가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καινός κτίσις)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에서 새로운 피조물에 쓰인 단어는 ‘카이노스’입니다. 이 단어가 만일 ‘네오스’ 라는 단어로 쓰였다면 그리스도안에 있다고 해도 단지 시간적으로 새로와졌다가 다시 과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카이노스가 쓰인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하게 이 구절에 쓰인 ‘카이노스’는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리스도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카이노스의 하늘, 카이노스의 땅, 카이노스의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 바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성도들이 이 영광을 영원히 누리도록, 예수님은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시는 피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이 카이노스의 영광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카이노스’의 영광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네오스의 삶입니까? 아니면 카오노스의 삶입니까? 네오스의 삶이란, 잠시 새롭게 됐지만, 이전의 습관과 행동으로 돌아가는 삶입니다. 네오스의 삶은 겉으로는 새로운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악에 쉽게 물들고, 회개한다고 하지만, 습관적인 삶을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성도는 카이노스의 삶이 되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17의 말씀같이 우리는 진실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다른 것을 닮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의 생명 안에 그 생명을 전하고 예수의 향기를 내는 삶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존재임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 카이노스의 영광의 삶을 사는 존재로서 어떤 결단을 하며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