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선교와 함께 하는 특별 수요예배 (1주차) - 선…
Author
bethelfaith
Date
2018-06-10 00:00
Views
384

오늘 목회 칼럼은 특별수요예배 첫째 날에 전한 메시지를 요약했습니다. 선교의 소명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요냐야.. 네가 수고도 않고 재배도 않은 박넝쿨, 하루밤에 났다가 하루밤에 말라 버린 박넝쿨로 인해 그렇게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박텅쿨을 아꼈는데 말이다. 봐라.. 이 성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명이요. 가축도 많은데 내가 어찌 그들을 아끼지 않겠냐(요나서4:10-11)”
하나님이 아끼신다는 이 말씀, 저는 이것이 선교를 향한 부르심의 이유라 믿습니다. 여기 우리 모두는 이 부르심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들었고, 그 복음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됐고, 믿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 때문에 우리는 또 선교의 소명을 갖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부르심은 인종을 초월합니다. 부르심은 국가를 뛰어 넘습니다. 부르심은 모든 장애와 종교적 문제 또한 뛰어 넘죠. 오늘 본문처럼 인종도 다르고, 국가도 서로 적대 관계였고, 종교도 서로 다른, 하나님을 대적했던 앗수르마저도 하나님은 그들을 회개케 하기 위해 요나를 보내셨고, 또한 그들이 돌이켰을 때 용서하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주님의 이 뜨거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에스겔33:11)” 우리는 보편적으로 악인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나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가 이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면 주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 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에스겔 33:6절)
여기서 칼은 심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파수꾼은 마땅히 나팔을 불어야 될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이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는 죄를 파수꾼의 손에서 찾는다는 말씀, 우리는 이 말씀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파수꾼의 한 사람입니다. (중략)
다만 각자의 부르심에 대한 특별한 소명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경우에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특별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각자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나, 변호사로, 어떤 사람들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오너로, 어떤 사람들은 직장인으로 각자가 부르신 땅이 있습니다. 그 곳이 부르심을 받은 선교지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 곳이, 예루살렘이든, 땅 끝이든, 모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 마음을 붙들 때, 우리는 선교의 소명을 부름받아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으니(고전3:6)” 우리 교회는 아이티에 복음을 심은 교회일까요? 물을 주는 교회일까요?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