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들러리 침례 요한
Author
bethelfaith
Date
2018-04-22 00:00
Views
341

침례 요한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 꽤나 권위있고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요한은 광야에서 지내는 촌부에 불과했지만(마 3:1), 그가 ‘회개’를 촉구할 때는, 엄청난 찔림과 부담에도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 자체가 광야의 삶인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주: 쥐엄나무 열매 - 주로 가난한 자들이 먹은 대표적인 음식) 이었습니다(마3:4). 그럼에도 온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사람들은 요한을 보러 몰려왔고,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때론 요한은 바리새인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고 할 정도로 담대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렇게 요한이 보여 준 권위, 담대함,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들을 통해 심중에 생각하길 그가 ‘그리스도(눅3:15)’ 라고 여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와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어느날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자가 날로 인가가 높습니다.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러 다 그리로 갑니다(요3:26)” 라고 말을 전하자,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결혼에 단지 들러리 하러 온 친구에 비유하죠(요3:29).” 또한 요한은 그래서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신랑이나 신부의 들러리가 해야 될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신랑이나 신부에게 집중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가끔 연예인들의 결혼 기사 중에 “민폐 하객” 이런 타이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연예인들의 친구 중, 축하 하객으로 온 사람이 주인공인 신랑보다, 신부보다 더 돋보인다는 의미로 쓴 자극적인 기사의 제목입니다. 이런 상황에 빗대어 요한은 자신이 이런 “민폐 하객”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들러리의 목적은 오직 모든 시선이 신랑과 신부에게만 집중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고든 맥도널드의 책,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에 보면, 저자 자신의 다음과 같은 얘기가 소개 됩니다. 그는 9.11 테러로 World Trade Center 가 무너졌을 때, 아내와 함께 구세군의 일을 돕기 위해 갔다고 합니다. 너무나 혼란스런 그 때에.. 고든 부부 내외는 그 첫 주에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 구조단과 함께 보내면서 혹시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그 폐허 더미를 파해쳤습니다. 고든 내외가 속한 팀은 한 시간 단위로 물부터 장화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것을 생존자를 구조하는 팀에게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느날 밤, 늦은 시간 고든은 소방수들 틈에 있었는데, 그들은 쉬지도 않고 일주일 내내 하루 스물네 시간씩 일을 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든이 이렇게 그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곳을 떠나 두어 시간이라도 쉬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 말에 팀장이 이렇게 답했다고 하네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저 더미 속에 우리 형제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저는 앞에서 요한이 자신의 인기와 명예, 권위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들러리로 여겼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인 우리는 이렇게 오직 신랑이신 그리스도만을 돋보이게 하는 삶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든의 얘기에서도 소방수는 자신의 목적이 분명했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받은 이 은혜와 부르심의 목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부르심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되짚고 점검하며, 또한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 전심을 다해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