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그리스도인의 믿음 시리즈 7 - 믿음(1)
Author
bethelfaith
Date
2015-08-20 00:00
Views
1981
“그리스도인의 믿음 시리즈 7 - 믿음(1)’
믿음의 출발 -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선 우린 모든 종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종교는, 그것이 비교 종교학에서 말하는 고등종교이든, 토속신앙이 믿는 신이든, 신께 나아가기 위한 길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종교적 의식과 선행과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들만의 종교 행위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반대다. 기독교의 출발은 인간의 이런 선행과 도덕과 행함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위로부터 출발한다.
빌립보서 2:6-8절은 이렇게 증언한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바꿔말하면, 의롭게 되는 것, 구원을 받는 것에 믿음이 꼭 조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믿음이 조건이라고 해서 믿음이 의롭게 되는 것, 구원을 얻는 것에 따라오는 행위라는 말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그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그 은혜를 단지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행위라면 우리가 행함으로 의로워져야 하는데, 그런 인생은 아무도 없다.
믿음의 길 -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4:12을 함께 읽어보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믿음에는 세 가지의 동의가 필요하다.
1) 지적인 동의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호세아서 4장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계시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로마서에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임을 지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지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그 구원을 천국가는데만 동의하고 우리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구원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의 변화가 없는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는 죽은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2) 의지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지적인 동의와 함께 이것을 받아들이는 의지적 동의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것은 진리를 인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의지적인 확신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이 참되다고 하는 지식적인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 받아들이는 결단을 말하는 것이다.
3) 의존적 동의 - 믿음은 전적인 의존관계임을 동의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구원은 나의 열심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임을 받아들이고 그 분께만 맡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존이다. 어떤 때는 내 기분이 좋고 감정이 좋아서 믿어 줄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회에 갔더니 너무 분위기가 좋고 은혜로와서 믿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분과 감정과 상황에 상관없이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따른 구원에는 감정이 수반되지 않을 수 있다. 감정에 의존하는 구원에 치우치면 신비주의와 미신적으로 빠질 수가 있다.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믿음의 출발 - 믿음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선 우린 모든 종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든 종교는, 그것이 비교 종교학에서 말하는 고등종교이든, 토속신앙이 믿는 신이든, 신께 나아가기 위한 길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종교적 의식과 선행과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들만의 종교 행위가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반대다. 기독교의 출발은 인간의 이런 선행과 도덕과 행함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편에서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기독교의 믿음은 위로부터 출발한다.
빌립보서 2:6-8절은 이렇게 증언한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바꿔말하면, 의롭게 되는 것, 구원을 받는 것에 믿음이 꼭 조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믿음이 조건이라고 해서 믿음이 의롭게 되는 것, 구원을 얻는 것에 따라오는 행위라는 말이 아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그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신 그 은혜를 단지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위가 아니다. 행위라면 우리가 행함으로 의로워져야 하는데, 그런 인생은 아무도 없다.
믿음의 길 -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4:12을 함께 읽어보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믿음에는 세 가지의 동의가 필요하다.
1) 지적인 동의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호세아서 4장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계시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로마서에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임을 지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지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그 구원을 천국가는데만 동의하고 우리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구원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의 변화가 없는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는 죽은 믿음이라고 지적한다.
2) 의지적인 동의가 있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지적인 동의와 함께 이것을 받아들이는 의지적 동의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것은 진리를 인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의지적인 확신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이 참되다고 하는 지식적인 앎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 받아들이는 결단을 말하는 것이다.
3) 의존적 동의 - 믿음은 전적인 의존관계임을 동의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구원은 나의 열심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임을 받아들이고 그 분께만 맡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존이다. 어떤 때는 내 기분이 좋고 감정이 좋아서 믿어 줄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집회에 갔더니 너무 분위기가 좋고 은혜로와서 믿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분과 감정과 상황에 상관없이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따른 구원에는 감정이 수반되지 않을 수 있다. 감정에 의존하는 구원에 치우치면 신비주의와 미신적으로 빠질 수가 있다.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