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세상 가운데 보내는 성령의 공동체

Bethel Faith Vison

베델믿음칼럼

그리스도인의 믿음 시리즈 5 - 중생

Author
bethelfaith
Date
2015-08-20 00:00
Views
1887
“그리스도인의 믿음 시리즈 5 - 중생’


중생, 한자어로 다시 산다는 이 말은, 거듭남을 말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인간의 창조성,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주어지는 자격이며, 그 삶을 말한다. 인간이 10개월을 엄마 뱃속에서 있다 태어나는 것을 우린 ‘아기가 태어났다고 표현한다. 아기는 스스로 태어날 수 없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아빠, 엄마의 몫이다.

이 태어남의 영적인 과정도 마찬가지다. 멸망받아야 될 인간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성경이 말하는 태어남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다시 말해, 거듭남, 중생이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될 새로운 생명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사, 우릴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거듭남은 근본적인 변화다.

근본적인 변화는 내 삶을 지배하는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변화다. 이전엔 내 욕심대로 사는, 흑암의 백성이었지만 거듭난 후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이는 고린도후서 5:17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해서 어떤 신비적인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생한다고 해서 기도할 때 마다 가슴이 뜨겁고, 눈물이 나고, 방언이 터지는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 70-80년대에 한국의 오순절 교단에서는 방언을 해야만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방언이 없으면 구원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구원을 받은 증거로 하나님이 방언을 줄 수는 있지만 꼭 방언이 구원받은 표징은 아니다.


거듭남은 즉각적인 변화다.

이 말은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중간 단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중생 이전의 단계에 대해 언급을 했었다. “예비적 은총, 중생이전준비설 (PREPARATIONISM)” 이라는 말로 불린 이 개념은 죄인들이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도록 하나님이 율법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죄를 슬퍼하고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경 읽기, 설교듣기, 묵상, 기도, 영적인 교제들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예비적 은총이나 중생이전 준비설은 매우 위험한 신학적 사상이다. 심지어 구원을 위해 인간의 공로가 개입될 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


거듭남은 내면의 변화다.

중생은 인간의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언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거듭난 날짜를 알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구원파가 이렇게 주장하는데, 구원의 날짜를 안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인간의 사고에 밀어넣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만이다. 또한 이런 일은 구원에 있어 성령의 사역을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그 변화를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 바로 이 믿음은 의지적인 결단이며, 순종이며 헌신이다.


거듭남은 차별이 없다.

성령님은 중생하는 영혼들을 차별하지 않는다.성품의 됨됨이의 차이, 직업의 차이, 남, 녀의 차이등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효력을 갖고 유효한 사역을 감당하신다. 예수님의 우편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구원받았다. 카톨릭에서는 중생이 침례에 의해 효력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침례를 받고 안 받고 중생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직 중생은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이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