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부활, 생명의 사건
Author
bethelfaith
Date
2015-04-20 00:00
Views
2512
부활, 생명의 사건
어제 새벽 예배와 친교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막내, 민주가 느닷없이 물어봅니다.
“내일 EASTER” 인데 뭐 해? 에그헌팅하지..?”
민주의 머리엔 부활절에 에그헌팅을 잘 해서 에그를 많이 가져야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가 집으로 돌아간 그 자리에 저는 민주의 질문을 받고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릴지 생각하고, 침례식과 교회 행사들을 준비하면서, 정작 부활이 ‘내겐 어떤 의미인가’ 고민이 됐습니다.
2,000년 전,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했던 여인들에게 이 날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발라서 시체를 썩지 않게 하려고 무덤을 찾기로했던, 어떻게 보면 분주한 날이었습니다. 메시야로 믿었던 분의 죽음 앞에서 좌절과 낙심과 고통으로 가득했던 여인들은, 그 죽음의 현장에서 도착해서 발견한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충격에 휩싸였던 그 순간, 여인들은 두려워말라고 위로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의 첫 목격자로 여인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왜 제자들이 아니고, 여인들이었을까?’ 의외입니다. 왜나하면 당시 여인들은 법정에서 증인들로도 채택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증인으로 4복음서 모두 여인들을 증인으로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 출신인 리스트로벨이 쓴 ‘특종, 믿음, 사건’이라는 책에 “이 여인들의 증거 채택이 얼마나 확실한 증거인지에 대해서” 윌리엄 레인 크레그 박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복음서의 보고는 기사의 진실성을 더 한층 뒷받침해 준다. 1세기에는 여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었으므로,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굳이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부활의 증인은 이렇게 증인으로도 채택될 수 없었던 연약하고 힘없는 여인들로 시작됩니다.
랍비에게 어느 구도자가 물어봅니다. “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가시떨기 나무같은 하찮은 나무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까? 만일 올리브나무나 종려나무같은 화려한 나무에 나타났다면 하나님이 위엄과 영광이 더 드러났을 텐데 말입니다”
랍비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시 떨기 나무 같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나타나셨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 가운데 너무나 하찮고 보잘 것 없고 고통받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라네”
오늘 우리 중, 어떤 분은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만한 여유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너무 바빠서 주님의 부활이 별로 감격도 감동도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절은 교회 생활하다 보면 늘 갖는 연례행사로 여기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행사와 기념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사건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사망가운데 죽어야 될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릴 구원하시고 다시 살게 하신 생명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에도 선포되야 될 생명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생명의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우린 말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부활의 목격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자랑했듯이..”
오늘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이 땅에 부활의 사건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일에,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주) 예화는 이전 설교때 사용했던 예화로, 부활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해 주어 옮겼습니다.
어제 새벽 예배와 친교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막내, 민주가 느닷없이 물어봅니다.
“내일 EASTER” 인데 뭐 해? 에그헌팅하지..?”
민주의 머리엔 부활절에 에그헌팅을 잘 해서 에그를 많이 가져야지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가 집으로 돌아간 그 자리에 저는 민주의 질문을 받고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릴지 생각하고, 침례식과 교회 행사들을 준비하면서, 정작 부활이 ‘내겐 어떤 의미인가’ 고민이 됐습니다.
2,000년 전,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했던 여인들에게 이 날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발라서 시체를 썩지 않게 하려고 무덤을 찾기로했던, 어떻게 보면 분주한 날이었습니다. 메시야로 믿었던 분의 죽음 앞에서 좌절과 낙심과 고통으로 가득했던 여인들은, 그 죽음의 현장에서 도착해서 발견한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충격에 휩싸였던 그 순간, 여인들은 두려워말라고 위로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의 첫 목격자로 여인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왜 제자들이 아니고, 여인들이었을까?’ 의외입니다. 왜나하면 당시 여인들은 법정에서 증인들로도 채택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증인으로 4복음서 모두 여인들을 증인으로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 출신인 리스트로벨이 쓴 ‘특종, 믿음, 사건’이라는 책에 “이 여인들의 증거 채택이 얼마나 확실한 증거인지에 대해서” 윌리엄 레인 크레그 박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는 복음서의 보고는 기사의 진실성을 더 한층 뒷받침해 준다. 1세기에는 여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없었으므로,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굳이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부활의 증인은 이렇게 증인으로도 채택될 수 없었던 연약하고 힘없는 여인들로 시작됩니다.
랍비에게 어느 구도자가 물어봅니다. “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가시떨기 나무같은 하찮은 나무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까? 만일 올리브나무나 종려나무같은 화려한 나무에 나타났다면 하나님이 위엄과 영광이 더 드러났을 텐데 말입니다”
랍비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시 떨기 나무 같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에 나타나셨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 가운데 너무나 하찮고 보잘 것 없고 고통받는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라네”
오늘 우리 중, 어떤 분은 부활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만한 여유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이 너무 바빠서 주님의 부활이 별로 감격도 감동도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절은 교회 생활하다 보면 늘 갖는 연례행사로 여기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행사와 기념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사건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사망가운데 죽어야 될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의 구속으로 우릴 구원하시고 다시 살게 하신 생명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에도 선포되야 될 생명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생명의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우린 말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부활의 목격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자랑했듯이..”
오늘 우리가 밟고 살아가는 이 땅에 부활의 사건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일에,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주) 예화는 이전 설교때 사용했던 예화로, 부활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해 주어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