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세상을 향해 빛을 내라
Author
bethelfaith
Date
2015-03-01 00:00
Views
2187
세상을 향해 빛을 내라
지난 주 목회칼럼에서 식당에서 경험했던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얘기했었는데요. 그런데 이번 주에도 또 식당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실은 지난 주와 달리 정반대의 경험이라서 잠시 나누려고 합니다.
며칠 전 저는 몇몇 아는 분들과 함께 식당을 갔습니다. 뷔페집이어서 처음부터 서비스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서빙을 맡은 분이 친절하게 저희가 자리한 테이블에 관심을 갖고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누구나 다 친절한 서비스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특히 일행 중 한 분이 감동을 받아서 그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팁을 주었답니다. 물론 식사 후 팁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팁을 받아서일까요? 제가 보기에 서빙을 하신 분이 그 다음에는 더 친절하게 서빙을 해 주셔서 식사내내, 또 식사 후에도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실은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한 식당의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주, 제자훈련을 하면서 나눴던 얘기 중에 믿는 사람들의 식당 매너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한 얘기가 오버랩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매너 없다고 얘기한 기독교인들의 상당수가 정말 부끄럽게도 목사들을 비롯한 교회 직분자들이 많다는 얘기에는 자못 얼굴이 붉어지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아니 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식당은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곳입니다. 그래서 종업원이 손님들을 위해 좋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손님들이 종업원들에게 반말로 하대하고, 무시하고 상처를 줘서는 안 되는데…,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도하고 식사하는 것을 빤히 본 종업원들이 이런 기독교인들과 만났다면 얼마나 가증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겠습니까?
실은 이렇게 식당 매너, 서비스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제자훈련 중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는 유형들 중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야기 하는 중에 언급된 얘기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경우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무례하고, 거친 행동들로 인해 세상이 기독교인들을 배척하고 멸시하게 된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경우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결국 이 모든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이며, 박해입니다.
에베소서 5:18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서의 술취함은 직접적으로 술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에베소서 5장 전체를 묵상하면 할 수록 술취함은 단지 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탐욕과 허영과 욕심의 술에 취한 우리의 인생을 투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5장은 성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나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3-4)”
그렇습니다. 우린 매 순간 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술에 취하고 있는가? 성령에 취하고 있는가?”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인지…,’
이 순간도 주님은 성령에 취한 한 사람의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한 사람이 세상을 향해 빛을 밝히는 빛의 자녀라고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이런 빛의 자녀들이며, 빛의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지난 주 목회칼럼에서 식당에서 경험했던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에피소드를 얘기했었는데요. 그런데 이번 주에도 또 식당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실은 지난 주와 달리 정반대의 경험이라서 잠시 나누려고 합니다.
며칠 전 저는 몇몇 아는 분들과 함께 식당을 갔습니다. 뷔페집이어서 처음부터 서비스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서빙을 맡은 분이 친절하게 저희가 자리한 테이블에 관심을 갖고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누구나 다 친절한 서비스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특히 일행 중 한 분이 감동을 받아서 그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팁을 주었답니다. 물론 식사 후 팁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팁을 받아서일까요? 제가 보기에 서빙을 하신 분이 그 다음에는 더 친절하게 서빙을 해 주셔서 식사내내, 또 식사 후에도 꽤 기분이 좋았습니다.
실은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한 식당의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주, 제자훈련을 하면서 나눴던 얘기 중에 믿는 사람들의 식당 매너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한 얘기가 오버랩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 매너 없다고 얘기한 기독교인들의 상당수가 정말 부끄럽게도 목사들을 비롯한 교회 직분자들이 많다는 얘기에는 자못 얼굴이 붉어지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아니 내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식당은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곳입니다. 그래서 종업원이 손님들을 위해 좋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손님들이 종업원들에게 반말로 하대하고, 무시하고 상처를 줘서는 안 되는데…, 의외로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도하고 식사하는 것을 빤히 본 종업원들이 이런 기독교인들과 만났다면 얼마나 가증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겠습니까?
실은 이렇게 식당 매너, 서비스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제자훈련 중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는 유형들 중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야기 하는 중에 언급된 얘기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기독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경우보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의 무례하고, 거친 행동들로 인해 세상이 기독교인들을 배척하고 멸시하게 된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런 경우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결국 이 모든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모순이며, 박해입니다.
에베소서 5:18에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여기서의 술취함은 직접적으로 술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에베소서 5장 전체를 묵상하면 할 수록 술취함은 단지 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탐욕과 허영과 욕심의 술에 취한 우리의 인생을 투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5장은 성도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나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3-4)”
그렇습니다. 우린 매 순간 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술에 취하고 있는가? 성령에 취하고 있는가?”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인지…,’
이 순간도 주님은 성령에 취한 한 사람의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한 사람이 세상을 향해 빛을 밝히는 빛의 자녀라고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이런 빛의 자녀들이며, 빛의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