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HEL FAITH BAPT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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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델믿음칼럼

성서의 땅, 이스라엘 3 – 광야

Author
bethelfaith
Date
2014-02-23 00:00
Views
2338
성서의 땅, 이스라엘 3 – 광야


성서의 땅, 이스라엘은 제겐 방문하는 지역마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이었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델믿음교회의 교우들에게 ‘어떻게 하면 받은 감격과 은혜를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목회 칼럼에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배운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나눔은 누군가에게 좋은 정보와 유익을 주는 것 그 이상으로 오히려 제게 더 큰 유익과 은혜를 다시 누리게 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2주전, 주보에 연재가 시작된 첫 칼럼에서 이스라엘의 지형적 특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는데 잠시 기억을 상기시켜 보고 싶습니다. 이스라엘은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네 가지 유형의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 서쪽 지중해에서 시작되는 평야지대, 그 다음이 중앙구릉지대(쉐필라), 중앙 산악지대, 그리고 요단강 계곡 지대로 이어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그 지형중에서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스라엘 땅의 광활한 지역으로 펼쳐져 있는 광야지대입니다.

언뜻 보기에 광야는 태고부터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그 자체의 신비로운 위엄을 자랑하며 펼쳐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쪽엔 전 국토의 절반 가량을 세모꼴로 이루고 있는 네게브 사막의 신광야, 바란광야, 시내광야가, 중앙 산악지대를 걸쳐 사해로 이어진 유대광야는 믿음의 선배들이 그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갔던 흔적을 숨겨 둔 곳입니다. 이번 성지순례 탐방에는 제한된 일정으로 인해 유대광야 지역을 차로 이동하며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다음의 기회가 허락된다면, 광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며 그 광야를 걸었던 믿음의 발자취를 걷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만 벗어나면 눈 앞에 황랑하게 그림이 펼쳐지는데, 바로 척박한 땅 유대 광야입니다. 그나마 이스라엘은 지금이 우기철(보통 10월에서 그 다음해 3월)이라 그 땅에도 얕게 듬성듬성 솟아 있는 풀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정도의 푸르름을 보는 것도 매우 제한된 시기만 가능하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확인해 볼 수 있는 이 유대 광야는 바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이었고(삼26:1-3), 예수님이 사십일동안 시험받으셨던(마4:1-11) 장소입니다. 저희 일행은 유대 광야 어느 한 지점에 내려 5세기 말엽에 새워진 성 조지 수도원(The Monastery of St. George) 을 바라보고, 물건을 팔고 있는 베두인 족속과 와디 켈트 지역도 살펴 볼 수 있었지만, 이 얘기는 탐방 일정별로 칼럼을 쓸 때 자세하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지면에서는 광야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광야를 지칭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מִ֭דְבָּר)’ 입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같다는 말은 실제로 삶이 너무 힘들고 곤고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광야는 척박하고 메마른 지역,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을 떠올리는 단어입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매우 고통스런 현실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후 광야에서 ‘매일 먹을 것을 달라고, 물을 달라고, 왜 애굽에서 죽게 두지 이런 곳에 이끌고 와 죽이려고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소리 친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광야라는 단어가 말씀을 의미하는 단어인 ‘다바르’에서 나온 단어라는 것입니다.

다바르는 말씀을 듣고 청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데, 바로 이 광야가 말씀이 나오는 장소이며, 말씀을 듣고 순종함을 배우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인생의 광야를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삶의 굴곡이 없고, 평탄할 때는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광야에서, 광야를 통해서 깊이 만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또, 이 다바르라는 단어는 지성소를 의미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시편28:2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이렇게 고백할 때 쓰인 ‘지성소’라는 단어가 바로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에서 파생된 ‘데비르’라는 단어라는 점은 또한 우리를 광야의 깊은 의미로 이끌어 줍니다.

바로 광야가 하나님의 지성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만나는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다바르라는 말은 역병을 의미하는 ‘데베르’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우리는 역병과 같은 파괴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우리는 어떤 광야의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시간입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참고) 성서의 땅, 이스라엘 시리즈는 서성봉목사가 지난 11일간(1월 27일 - 2월 6일)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경험한 개인적인 체험과 배움을 나누는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