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내가 입고 있는 옷
Author
bethelfaith
Date
2013-11-04 00:00
Views
2594
내가 입고 있는 옷
가을이 깊어져 갈 수록 하늘의 푸르름과 더해 아틀란타를 뒤덮고 있는 나무들의 패션은 점점 더 형형색색 화려함을 더해 갑니다. 올 해 유난히 이 도시는 전보다 더 맑고 찬란합니다. 물론 조금씩 겨울 앞에 가며, 한동안 불쑥불쑥 뛰어 나오던 사슴이나 다람쥐들도 뜸해진 것 같고, 살갗에 부딪히는 바람도 제법 매섭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몇 주 후면 앙상해질 자신의 모습이 싫은지 더욱더 나무들은 자신을 뽐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저는 가을 나무들의 패션처럼 화려한, 이 패션에 대한 남다른 삶을 살아온 한 분이 소개된 글을 읽게 됐습니다. 가끔 방문하는 인터넷 카페에 소개 된 어떤 분의 글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내용입니다. 글을 쓰신 분은 KBS아침마당에 나와 인터뷰를 한 한국 패션업계의 산 증인인 노라노여사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제가 잘 몰랐던 분이라 검색을 해 보니 이 분은 현재 80대 중반(1928년생) 이신데도 아직도 현역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한국의 패션업계에서 최초의 일들을 만들어 낸 산 증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1956년 한국 최초의 패션쇼,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 미니스커트로 한국 여성들의 삶에 획기적인 개혁을 일으켰던 윤복희씨의 미니스커트를 디자인하신 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읽은 글에는 방송에서 나온 다음의 대화가 잠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 아마도 사회자가 옷을 입는 법에 대해서 질문을 한 듯 합니다.
그러자 온화하신 표정으로 말씀하시길…
“옷은 그 입은 옷이 안 보여야 진짜 잘 입은 것입니다. 즉, 그 사람을 볼 때 입은 옷부터 눈에 확 띄면 그것은 옷을 잘못입은 것이랍니다”
우리는 학교 교육에서 ‘인간 생활의 필수 3대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늘 그 답을 ‘의식주(衣食住)’ 라고 배워왔습니다. 그 중 첫번째가 바로 ‘옷’입니다.그만큼 옷은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 왔습니다(성경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에게 하나님이 직접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3:21).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옷이 언젠가부터 알 수 없지만, 옷은 생활의 필수품이면서도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는 ‘미(美)’ 로서의 역할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절마다, 상황마다, 기능적으로, 패션으로서의 옷을 입게 된 것일 겁니다.
이렇게 옷을 적절하게 갖춰 입어야 하는 것,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옷보다 옷을 입은 사람이 먼저 보여야 된다’ 는 생각이 노라노여사의 생각이었고, 이 생각을 읽는 그 순간 저는 오늘 우리 성도가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안에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임을(빌1:21) 고백하는 성도라면, 우리가 어떤 삶의 옷을 입어도 예수님이 드러나야 되는데, 진실로 이런 모습이 내 안에 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입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삶과 환경의 옷에서도 아름답게 보석처럼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거칠고 누더기 같은 삶의 옷이어도 반짝이는 별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옷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고민해 봅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어떠하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는 내 삶이 되기 위해, 오늘 이 고민이 우리의 진실된 거울이 되길 바랍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가을이 깊어져 갈 수록 하늘의 푸르름과 더해 아틀란타를 뒤덮고 있는 나무들의 패션은 점점 더 형형색색 화려함을 더해 갑니다. 올 해 유난히 이 도시는 전보다 더 맑고 찬란합니다. 물론 조금씩 겨울 앞에 가며, 한동안 불쑥불쑥 뛰어 나오던 사슴이나 다람쥐들도 뜸해진 것 같고, 살갗에 부딪히는 바람도 제법 매섭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몇 주 후면 앙상해질 자신의 모습이 싫은지 더욱더 나무들은 자신을 뽐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저는 가을 나무들의 패션처럼 화려한, 이 패션에 대한 남다른 삶을 살아온 한 분이 소개된 글을 읽게 됐습니다. 가끔 방문하는 인터넷 카페에 소개 된 어떤 분의 글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내용입니다. 글을 쓰신 분은 KBS아침마당에 나와 인터뷰를 한 한국 패션업계의 산 증인인 노라노여사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제가 잘 몰랐던 분이라 검색을 해 보니 이 분은 현재 80대 중반(1928년생) 이신데도 아직도 현역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한국의 패션업계에서 최초의 일들을 만들어 낸 산 증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1956년 한국 최초의 패션쇼, 1966년 대한민국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 미니스커트로 한국 여성들의 삶에 획기적인 개혁을 일으켰던 윤복희씨의 미니스커트를 디자인하신 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읽은 글에는 방송에서 나온 다음의 대화가 잠시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 아마도 사회자가 옷을 입는 법에 대해서 질문을 한 듯 합니다.
그러자 온화하신 표정으로 말씀하시길…
“옷은 그 입은 옷이 안 보여야 진짜 잘 입은 것입니다. 즉, 그 사람을 볼 때 입은 옷부터 눈에 확 띄면 그것은 옷을 잘못입은 것이랍니다”
우리는 학교 교육에서 ‘인간 생활의 필수 3대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늘 그 답을 ‘의식주(衣食住)’ 라고 배워왔습니다. 그 중 첫번째가 바로 ‘옷’입니다.그만큼 옷은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 왔습니다(성경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에게 하나님이 직접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3:21).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옷이 언젠가부터 알 수 없지만, 옷은 생활의 필수품이면서도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는 ‘미(美)’ 로서의 역할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절마다, 상황마다, 기능적으로, 패션으로서의 옷을 입게 된 것일 겁니다.
이렇게 옷을 적절하게 갖춰 입어야 하는 것,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옷보다 옷을 입은 사람이 먼저 보여야 된다’ 는 생각이 노라노여사의 생각이었고, 이 생각을 읽는 그 순간 저는 오늘 우리 성도가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안에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임을(빌1:21) 고백하는 성도라면, 우리가 어떤 삶의 옷을 입어도 예수님이 드러나야 되는데, 진실로 이런 모습이 내 안에 있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입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삶과 환경의 옷에서도 아름답게 보석처럼 빛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거칠고 누더기 같은 삶의 옷이어도 반짝이는 별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옷만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고민해 봅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어떠하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보이는 내 삶이 되기 위해, 오늘 이 고민이 우리의 진실된 거울이 되길 바랍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