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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hel Faith Vison

베델믿음칼럼

튜빙의 추억(Tubing)

Author
bethelfaith
Date
2013-09-10 00:00
Views
2739
튜빙의 추억(Tubing)


마침 지난 월요일 노동절의 연휴를 기회삼아 헬렌 조지아에 있는 어느 캠프를 빌려 청지기위원회 맴버들과 하루 동안 함께 했던 시간은 제겐 메우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의 삶을 조금 벗어나 좀처럼 갖기 힘든 야외에서의 만남은 쉼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었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추억 하나를 떠 올려 봅니다. 일명 튜빙의 추억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헬렌 조지아의 강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튜빙은 산과 강, 그리고 하늘의 푸르른 창공과 어울리는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코스로 튜브를 타고 강의 흐름에 맞춰 강을 타고 내려오는 여행입니다. 이 곳은 강이 그리 깊지 않고, 물줄기도 그리 쎄지 않아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제법 알려진 좋은 곳이지요. 캠프에 간 형제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각자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튜빙을 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튜브 하나씩, 아이들과 어른에게 맞는 튜브, 안전을 위한 구명조끼, 그리고 밸트를 하나씩 얻었습니다. 벨트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른들의 튜브와 함께 연결해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필요한 장비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튜빙의 기쁨을 기대하며 강에 몸을 맞겨 멋진 여행을 상상하며 강에 튜브를 내리고 몸을 얹었습니다. 자 드디어 튜빙의 시작입니다. ‘멋진 튜빙의 흥분을 기대하며…’


그런데, 이제부터가 우리가 겪은 튜빙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기대했던 멋진 튜빙의 흥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아빠들에겐…’

우선 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와는 밸트로 묶고, 민하는 제법 컸다고 생각하고 밸트를 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첫 시작은 신나고 좋았는데 그 환호는 바로 걱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민하가 강 가에 걸려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민주와 함께 내려가면서 멀뚱하게 강 가에 걸린 민하만을 쳐다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은 점점 다급해 지는데, 옆에서 민주는 ‘오빠 어떡하냐고’ 우는 것입니다. 마침 마지막 튜브로 내려오던 동일형제님이 자신의 튜브에서 내려 민하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난의 전조(?) 였습니다. 이제부터가 튜빙의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 것이지요. 민하를 기다리다 만난 저는 이제 한 손으로 민하의 튜브를 붙들고 내려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럭저럭 내려가나 싶었는데 갑자기 강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 큰 바위에 걸렸습니다.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멈춰 버린 것입니다. 이 때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튜브에서 내려 아이들의 튜브를 밀어주고 다시 제 튜브를 타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튜브에서 내렸는데, 그 순간 물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허우적 허우적..’ 물이 제 가슴까지 차는데, 막 벌어진 일과 여러가지 생각에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떠 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야 했고, 제 튜브를 다시 타야했고, 주머니에 넣어 뒀던 지갑이 다 젖은 것입니다. 뭐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는데 제대로 몸을 가누려고 하다보니 다시 빠지고, 또 바위에 다리가 부딪히고 영 엉망진창이 되 버린 것입니다. 물론 그 고비는 넘겼지만, 마지막 목적지까지 올 때까지 여러번 또 물에 빠졌습니다. 아! 마지막 내릴 때 조차도…’

미리 도착한 아빠들의 표정을 보니 심상치 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아이들을 위해 아예 걸어내려왔다고 합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호소하고 지갑이 다 젖었다고 합니다. 환호와 흥분의 튜빙은 적어도 아빠들에겐 고난의 추억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튜빙의 추억은 고난이었지만, 저는 우리 아빠들의 희생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튜빙의 기쁨을 안겨주기 위해 희생한 아빠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소중한 배움은 아빠는 자녀들을 위해 그 곳에 함께 있어 주었다는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고난의 자리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결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우리의 아빠되시는 주님께 그냥 맡기며 살고 싶은데.. 그런데 잘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튜빙을 혼자 하려고 하기 때문은 아닌지 곰곰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