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흩는 목회자인가, 모으는 목회자인가’ 라…
Author
bethelfaith
Date
2013-05-25 00:00
Views
4686
‘흩는 목회자인가, 모으는 목회자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단상
매우 바쁜 일상의 삶에서 오랜 벗과 만나는 차 한 잔의 나눔과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때론 이런 행복이 우연히 옆에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제게도 우연히 찾아 온 만남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맥도날드에서 (종종 사무실처럼 가끔 들리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때, 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 여기는 어떤 일이세요?’
10년전에 교회 생활을 함께 했던 J 집사님이었습니다.
“아! 집사님 반갑습니다. 가끔 들리는 곳이에요”
아틀란타에서 개척 교회를 하고, 지난 2년 동안 우연히 한 두번 마주친 적이 있던 집사님이었습니다. 집사님은 첫째 민형이와 같은 또래의 손주가 있는 이젠 제법 지긋한 연세가 되셨지만, 눈가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진 것 외엔 세월이 비껴간듯 여전히 청년같은 모습으로 옆에 서 계셨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함께 앉아 차 한잔의 짧은 담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10년전의 추억이 담긴 교회 얘기, 가족 얘기를 풀어내는 집사님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담소를 갖던 중, 우연히 건넨 집사님의 한 마디가 제 마음에 잔잔한 의미를 던졌습니다.
“목사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에는 뭣하지만, 어떤 분은 사람을 흩는 분이 계시고, 어떤 분은 사람을 모으는 분이 계신 것 같네요”
짧게 던진 집사님의 한 마디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많은 무게를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군복무로 따진다면 아직도 훈련병인 제겐 그 한 마디의 무게가 매우 큰 도전으로 다가 왔습니다.
‘아 맞다. 나는 흩는 목회인가? 아니면 모으는 목회인가?’
물론 최근에 사도행전 강해를 하기에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하나님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인들을 의도적으로 흩으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흩어짐으로 인해 복음의 일꾼들이 세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보편적 진리가 적용되는 목회의 현장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목회자라면 이 한 마디, ‘흩는 목자가 아니라 모으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잘 압니다. 이 한 마디는 바로 목회자의 삶이며, 그가 누구인지를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한 마디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많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라(눅12:48)” 는 말씀으로 더욱더 증폭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제 자신을 볼 수록 저는 말에도, 행동에도 여전히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참 많습니다. 가끔은 아내에게 “착한 내가 참는다’라는 뼈 아픈 핀잔을 들을때면 솔직히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한데, 그래도 제가 위로받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제 멍에를 함께 져 주신다는 진리이고(마11:28-30), 또 다른 하나는 오히려 여러분들이 부족한 제게 주시는 사랑때문입니다. 섬기기 보다 섬김을 받는 것 같은 넘치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목이 매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드림.
매우 바쁜 일상의 삶에서 오랜 벗과 만나는 차 한 잔의 나눔과 여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생각만 해도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때론 이런 행복이 우연히 옆에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제게도 우연히 찾아 온 만남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맥도날드에서 (종종 사무실처럼 가끔 들리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때, 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사님, 여기는 어떤 일이세요?’
10년전에 교회 생활을 함께 했던 J 집사님이었습니다.
“아! 집사님 반갑습니다. 가끔 들리는 곳이에요”
아틀란타에서 개척 교회를 하고, 지난 2년 동안 우연히 한 두번 마주친 적이 있던 집사님이었습니다. 집사님은 첫째 민형이와 같은 또래의 손주가 있는 이젠 제법 지긋한 연세가 되셨지만, 눈가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진 것 외엔 세월이 비껴간듯 여전히 청년같은 모습으로 옆에 서 계셨습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함께 앉아 차 한잔의 짧은 담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10년전의 추억이 담긴 교회 얘기, 가족 얘기를 풀어내는 집사님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담소를 갖던 중, 우연히 건넨 집사님의 한 마디가 제 마음에 잔잔한 의미를 던졌습니다.
“목사님..,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에는 뭣하지만, 어떤 분은 사람을 흩는 분이 계시고, 어떤 분은 사람을 모으는 분이 계신 것 같네요”
짧게 던진 집사님의 한 마디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많은 무게를 담고 있었습니다. 특히 군복무로 따진다면 아직도 훈련병인 제겐 그 한 마디의 무게가 매우 큰 도전으로 다가 왔습니다.
‘아 맞다. 나는 흩는 목회인가? 아니면 모으는 목회인가?’
물론 최근에 사도행전 강해를 하기에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하나님은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인들을 의도적으로 흩으실 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흩어짐으로 인해 복음의 일꾼들이 세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보편적 진리가 적용되는 목회의 현장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목회자라면 이 한 마디, ‘흩는 목자가 아니라 모으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잘 압니다. 이 한 마디는 바로 목회자의 삶이며, 그가 누구인지를 증거하는 매우 중요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한 마디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많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라(눅12:48)” 는 말씀으로 더욱더 증폭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제 자신을 볼 수록 저는 말에도, 행동에도 여전히 부족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참 많습니다. 가끔은 아내에게 “착한 내가 참는다’라는 뼈 아픈 핀잔을 들을때면 솔직히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연약한데, 그래도 제가 위로받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제 멍에를 함께 져 주신다는 진리이고(마11:28-30), 또 다른 하나는 오히려 여러분들이 부족한 제게 주시는 사랑때문입니다. 섬기기 보다 섬김을 받는 것 같은 넘치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목이 매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