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세상 가운데 보내는 성령의 공동체

Bethel Faith Vison

베델믿음칼럼

물을 달라 하셨던 주님의 마음

Author
bethelfaith
Date
2013-03-31 00:00
Views
4430
지난 한 주간동안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제 자신이 주님의 고난에 얼마나 동참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고난, 십자가를 생각하면서도 제 마음에 특별히 다가오는 어떤 감동들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은 이 고백은 며칠 전, 성금요예배때 고백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고난 주간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뜻깊은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 금식을 해야 겠다는 마음을 먹고 월요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계속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왜 이렇게 금식이 힘들지? 주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아니라 내 의지로 하는 것인가?’ 실은 너무 힘들어 아내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금식이 힘들다는 생각이 찾아오자 아예 목요일부터는 ‘차라리 아침을 먹는 것이 낫겠다’ 고 생각하고 금식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이번 한 주간 십자가를 생각하면서도 감동이 없는 제 자신에 대해 답답해 했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주간을 보내던 중, 갑자기 청년때 교회 청년부에서 여름 수련회를 갔었는데, 그 기간 중에 십자가를 지고 채찍에 맞으시던 예수님 역할을 했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마침 제 앨범에서 그 때 사진을 찾을 수가 있어서 옆에 올려 놓았습니다(지금의 저와 많이 다른 모습이라 놀라지 마시길..)

제가 떠 올렸던 기억은 그렇게 채찍에 맞으며 빙 둘러 앉아 있던 청년들 앞에서 쓰러지면서 ‘내게 물을 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물을 달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면서 했던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은 그 때의 장면을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저는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이 만일 누군가에게 ‘물을 달라’고 했다면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쓰러지면서 ‘물을 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23년전 수련회의 그 때, 그 현장에서 ‘물을 달라’고 했던 기억이 왜 떠올랐을까 곰곰히 묵상해 봤습니다. 대체 왜 지금 그 말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잊혀진 추억의 앨범에서 먼지를 털고 다시 기억났을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기억은 저를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낮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셨던 그 장면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주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굳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셨습니다. 곧 주님은 거기서 물을 길러 온 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요청하십니다. “물을 달라” 그러나 여인은 ‘당신이 유대인인데 왜 물을 달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주님은 이 물에 대한 의미를 그 여인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물론 이 물은 말씀을 의미합니다(엡5:26). 성경은 또한 말씀이 육신되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14). 그렇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한 물, 곧 생명 되시는 자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물을 달라’ 했던 그 장면과 요4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물에 대해 묵상하면서오늘 ‘나는 ‘물을 달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 목말라 하며 그 물을 찾고 있는가’ 물어보게 됐습니다. 매일매일 마다 물에 대해 목말라 하는 삶은 곧 영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삶이 바로 부활의 삶을 갈망하며 사는 삶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님 매일매일 당신의 말씀에 목말라 하는 인생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