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군복과 파병경험
Author
bethelfaith
Date
2013-02-03 00:00
Views
3713
지난 월요일과 수요일엔 너무나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수개월전, 베델믿음교회 창립 1주년 감사 부흥회를 인도해 주셨던 미육군군목으로 섬기시는 김태일목사님(Taylor Kim)을 이 곳 아틀란타에서 다시 뵙게 된 것입니다. 교육차 에모리대학에 일주일간 방문하셨는데 그 짬을 얻어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선 순위인 교육 일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교회 예배 말씀을 부탁드릴 수 없었지만 후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김목사님은 아무래도 군대의 현실에서 군목으로 섬기시는 현장이어서 그런지 대화를 나눌 때 마다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번 만남에서도 배움이 컸는데, 그 중 오늘따라 가볍게 나누던 일상의 얘기에서 제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이 있어 잠시 소개합니다.
마침 파병을 다녀온 군인들의 군복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아무래도 부대에는 계급과 상관없이 파병을 다녀온 사람들과 파병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파병 경험이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급 외에 파병 경험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했더니, 그것은 다름아닌 군복 상의에 줄의 하나씩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군이 주둔해 있는 현재 전투를 수행하는 파병국에 다녀온 군인들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군인은 7, 8번씩 다녀온 군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얘기는, 계급이 높아도 파병 경험이 없는 군인은 계급으로 인해 명령에 복종을 하지만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덜 하다는 말씀을 해 주시더군요.
저는 이 파병 군인의 군복에 대한 얘기를 듣는 그 순간, 갑자기 제 마음에 강하게 파고드는 한 장의 이미지가 떠 올랐는데, 그것은 파병 경험이 있는 군인의 군복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군복에 하나씩 늘어나는 줄무늬가 바로 그리스도인이 감당하는 ‘고난’ 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고난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겪는 이 땅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 훈련을 잘 받고, 직분을 잘 감당하면 이 믿음의 순례 가운데 받는 고난도 잘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이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그가 얼마나 참된 그리스도인인지는 직분이 대변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집사나 장로나 목사이기 때문에 믿음이 좋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의 삶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년 부대 임기를 마치면 다시 전투 현장에 보내 달라고 신청하겠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전쟁터에 나가려 하지 않는데, 대체 이 군인은 왜 이리 전쟁터에 가고 싶어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지나갔지만, ‘그들을 누가 돌볼까, 누가 그들의 영혼을 위해 섬길까, 아무래도 갔다 온 사람이 낫지 않을까’ 하는 김목사님의 간절하고 절박한 영혼을 향한 마음에 저는 저절로 고개를 떨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린 잃어버린 영혼이 울부짖는 전쟁터 한 복판과 같은 이 땅에 함께 어울리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심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웃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상처 입은 영혼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처가 너무 깊어 교회와 담을 쌓고 지내는 잃어버린 우리의 벗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해 “누가 갈꼬?” 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며 그 길을 기꺼이 가겠다고 고집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남은 삶에 예수의 흔적을 채우게 되길 바랍니다.
바로 그 현장에서 함께 뵙게 되길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이사야49:13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수개월전, 베델믿음교회 창립 1주년 감사 부흥회를 인도해 주셨던 미육군군목으로 섬기시는 김태일목사님(Taylor Kim)을 이 곳 아틀란타에서 다시 뵙게 된 것입니다. 교육차 에모리대학에 일주일간 방문하셨는데 그 짬을 얻어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선 순위인 교육 일정으로 인해 아쉽게도 교회 예배 말씀을 부탁드릴 수 없었지만 후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김목사님은 아무래도 군대의 현실에서 군목으로 섬기시는 현장이어서 그런지 대화를 나눌 때 마다 참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번 만남에서도 배움이 컸는데, 그 중 오늘따라 가볍게 나누던 일상의 얘기에서 제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이 있어 잠시 소개합니다.
마침 파병을 다녀온 군인들의 군복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아무래도 부대에는 계급과 상관없이 파병을 다녀온 사람들과 파병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파병 경험이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계급 외에 파병 경험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했더니, 그것은 다름아닌 군복 상의에 줄의 하나씩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군이 주둔해 있는 현재 전투를 수행하는 파병국에 다녀온 군인들은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군인은 7, 8번씩 다녀온 군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얘기는, 계급이 높아도 파병 경험이 없는 군인은 계급으로 인해 명령에 복종을 하지만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덜 하다는 말씀을 해 주시더군요.
저는 이 파병 군인의 군복에 대한 얘기를 듣는 그 순간, 갑자기 제 마음에 강하게 파고드는 한 장의 이미지가 떠 올랐는데, 그것은 파병 경험이 있는 군인의 군복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군복에 하나씩 늘어나는 줄무늬가 바로 그리스도인이 감당하는 ‘고난’ 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고난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겪는 이 땅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 훈련을 잘 받고, 직분을 잘 감당하면 이 믿음의 순례 가운데 받는 고난도 잘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이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그가 얼마나 참된 그리스도인인지는 직분이 대변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집사나 장로나 목사이기 때문에 믿음이 좋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의 삶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년 부대 임기를 마치면 다시 전투 현장에 보내 달라고 신청하겠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전쟁터에 나가려 하지 않는데, 대체 이 군인은 왜 이리 전쟁터에 가고 싶어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지나갔지만, ‘그들을 누가 돌볼까, 누가 그들의 영혼을 위해 섬길까, 아무래도 갔다 온 사람이 낫지 않을까’ 하는 김목사님의 간절하고 절박한 영혼을 향한 마음에 저는 저절로 고개를 떨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린 잃어버린 영혼이 울부짖는 전쟁터 한 복판과 같은 이 땅에 함께 어울리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심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웃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상처 입은 영혼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처가 너무 깊어 교회와 담을 쌓고 지내는 잃어버린 우리의 벗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해 “누가 갈꼬?” 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며 그 길을 기꺼이 가겠다고 고집하는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남은 삶에 예수의 흔적을 채우게 되길 바랍니다.
바로 그 현장에서 함께 뵙게 되길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이사야49:13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