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한 잔의 무료 커피(A cup of free coffee) (2/5/2012)
Author
bethelfaith
Date
2012-09-22 00:00
Views
2765
한 잔의 무료 커피(A cup of free coffee)
차에 개스가 떨어지면 자주 가는 개스 스테이션이 있습니다. 요즘은 개스값이 많이 올라서 한 번 개스를 넣을 때마다 몇 센트라도 싼 곳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 것이 보통 우리네 서민들의 삶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늘 제 기대에 부응하는(?) 개스 스테이션에서 개스를 넣고 영수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영수증을 원한다고 요청 했습니다.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그냥 체크해서 주는 편인데 그날 만난 직원은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커피를 무료로 줄테니 원하면 갖고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대답은 ‘Yes’ 였습니다. 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달에도 여러번 개스 스테이션을 이용하고, 때론 영수증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것때문에 불편하거나 기분 나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날은 생소한 ‘무료 커피’의 배려와 예기치 못한 친절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단지 무료로 얻은 커피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개스 스테이션 직원의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제 마음에 쿡하고 와서 박힌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작은 배려임을 다시 기억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우린 ‘자신의 것’을 챙기며 살아가라고 요구 받습니다. 조금 손해본다고 여겨질 때면 곧 우린 감정적으로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민자가 겪는 삶의 애환을 얘기할라치면 아마도 며칠밤을 세워도 모자를 보따리를 풀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각박한 현장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살라는 말씀이 귀에 들릴리 없습니다. 여전히 우린 주기 보단 받아야 할 것이 많은데..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공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자신을 위해 살아간 사람을 기억하기 보다 남을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을 결코 쉽게 넘겨 버릴 수는 없습니다.
빈민과 병자, 고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테레사 수녀, 나환자촌에서 그들을 사랑하셨고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으셨던 손양원목사, 노틀담, 예일, 하버드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장애인 공동체를 섬기며 더욱 깊은 감명을 전해 준 헨리 나우웬등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자취가 섬김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때론 우리 곁의 일상에서도 만나는 배려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 추위를 입김으로 불어가며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에게서, 행동이 불편한 어린 장애우들의 등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길에서, 또한 젖을 먹이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품에서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주는 삶’의 자취를 만납니다.
모두 살아가는 삶의 목적과 시대는 다르지만, 우린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음을 배웁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고아들의 아픔과 장애우들의 불편함이 자신의 아픔이고 불편함이며, 젖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아기들의 생명이 자신의 생명임을 알기에 같은 마음이 되고, 손과 발이 되고 생명이 되어주는 세상이 있음을 우리는 삶의 일상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임을.(빌2:5) 주님은 우리와 같이 되려는 마음 때문에 십자가까지 복종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빌2:8).
저는 그 날 생소한 ‘무료 커피”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이 베델믿음교회 사역 현장의 목회자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또한 아들로서 만나는 모든 일과 삶에서 한 잔의 ‘무료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다짐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론 여러분이 어깨가 무겁고 피곤할 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무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차에 개스가 떨어지면 자주 가는 개스 스테이션이 있습니다. 요즘은 개스값이 많이 올라서 한 번 개스를 넣을 때마다 몇 센트라도 싼 곳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하는 것이 보통 우리네 서민들의 삶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늘 제 기대에 부응하는(?) 개스 스테이션에서 개스를 넣고 영수증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영수증을 원한다고 요청 했습니다.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그냥 체크해서 주는 편인데 그날 만난 직원은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커피를 무료로 줄테니 원하면 갖고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대답은 ‘Yes’ 였습니다. 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달에도 여러번 개스 스테이션을 이용하고, 때론 영수증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것때문에 불편하거나 기분 나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날은 생소한 ‘무료 커피’의 배려와 예기치 못한 친절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단지 무료로 얻은 커피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개스 스테이션 직원의 고도의 전략(?)일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제 마음에 쿡하고 와서 박힌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작은 배려임을 다시 기억해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우린 ‘자신의 것’을 챙기며 살아가라고 요구 받습니다. 조금 손해본다고 여겨질 때면 곧 우린 감정적으로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민자가 겪는 삶의 애환을 얘기할라치면 아마도 며칠밤을 세워도 모자를 보따리를 풀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삶의 각박한 현장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살라는 말씀이 귀에 들릴리 없습니다. 여전히 우린 주기 보단 받아야 할 것이 많은데..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공감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자신을 위해 살아간 사람을 기억하기 보다 남을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을 결코 쉽게 넘겨 버릴 수는 없습니다.
빈민과 병자, 고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테레사 수녀, 나환자촌에서 그들을 사랑하셨고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으셨던 손양원목사, 노틀담, 예일, 하버드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장애인 공동체를 섬기며 더욱 깊은 감명을 전해 준 헨리 나우웬등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자취가 섬김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때론 우리 곁의 일상에서도 만나는 배려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 추위를 입김으로 불어가며 거리를 청소하는 분들에게서, 행동이 불편한 어린 장애우들의 등을 닦아주는 따뜻한 손길에서, 또한 젖을 먹이는 세상 모든 엄마들의 품에서도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주는 삶’의 자취를 만납니다.
모두 살아가는 삶의 목적과 시대는 다르지만, 우린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음을 배웁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고아들의 아픔과 장애우들의 불편함이 자신의 아픔이고 불편함이며, 젖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아기들의 생명이 자신의 생명임을 알기에 같은 마음이 되고, 손과 발이 되고 생명이 되어주는 세상이 있음을 우리는 삶의 일상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임을.(빌2:5) 주님은 우리와 같이 되려는 마음 때문에 십자가까지 복종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빌2:8).
저는 그 날 생소한 ‘무료 커피”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이 베델믿음교회 사역 현장의 목회자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또한 아들로서 만나는 모든 일과 삶에서 한 잔의 ‘무료 커피’를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다짐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때론 여러분이 어깨가 무겁고 피곤할 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무료 커피 한 잔 드릴까요?”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