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델믿음칼럼
계절, 그리고 삶의 어울림(9/10/2011)
Author
bethelfaith
Date
2012-09-22 00:00
Views
3225
계절, 그리고 삶의 ‘어울림’
비가 며칠째 흩뿌리고 간 자리에 찾아온 추위가 몸을 움추리게 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가기 위해 이젠 한 겹 더 껴입을 옷을 찾게 되는군요. 밤새 차가운 공기에 시달린 차유리도 서리가 걷히려면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해 졌습니다. 그래도 낮엔 언제 추웠는지 모를 정도로 따스한 햇볕에 몸이 노근해 집니다. 벌써 주변에선 낮, 밤의 기온차로 몸이 약해져 원치않는 감기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참! 아틀란타의 날씨가 변덕스러움을 새삼 다시 느낍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같은 미국 땅이지만 서부쪽, 제가 3년간 사역했던 아리조나는 요즘도 한낮에 10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라서 더위에 힘겹게 버티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저도 경험했던 더위인지라 그 심정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더운 아리조나도 10월 말부터 그 다음 해 4월 말까지는 천국같다고 할 정도로 아주 시원한 계절을 만끽한답니다. 그래서 아리조나 분들은 그 좋은 한 때의 경험으로 한 여름철의 끔찍한(?) 더위를 잊고 그 다음 해를 또 맞이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지역마다 꽤 많이 다른 날씨를 겪지만, 그 곳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법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저는 이것을 ‘어울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어울림’이 인간네 삶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잘 어울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작게는 친구와 가족, 이웃, 넓게는 사회,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우린 ‘어울림’의 소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대 인간이라는 상대적인 어울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절대적인 자연에 비해.
그래서 우린 ‘어울림’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인 노력, 서로에게 한 발자욱 먼저 다가서는 내어놓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히10:24-25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자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는 말씀은 기독교인에겐 피할 수 없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어울림’의 소통을 잘 하지 못한다면, The rise of the planet the apes”의 영화에 나온 주인공 ‘시저’의 고통처럼, 황폐해진 우리네 삶의 단면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 칼럼이라는 짧은 지면때문에 더 담아야 할 생각을 넣지 못했기 때문에, 저도 여러분과 글로서 ‘어울림’을 잘 소통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비가 며칠째 흩뿌리고 간 자리에 찾아온 추위가 몸을 움추리게 합니다. 새벽에 교회를 가기 위해 이젠 한 겹 더 껴입을 옷을 찾게 되는군요. 밤새 차가운 공기에 시달린 차유리도 서리가 걷히려면 시간이 제법 많이 필요해 졌습니다. 그래도 낮엔 언제 추웠는지 모를 정도로 따스한 햇볕에 몸이 노근해 집니다. 벌써 주변에선 낮, 밤의 기온차로 몸이 약해져 원치않는 감기로 고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참! 아틀란타의 날씨가 변덕스러움을 새삼 다시 느낍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같은 미국 땅이지만 서부쪽, 제가 3년간 사역했던 아리조나는 요즘도 한낮에 10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라서 더위에 힘겹게 버티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저도 경험했던 더위인지라 그 심정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더운 아리조나도 10월 말부터 그 다음 해 4월 말까지는 천국같다고 할 정도로 아주 시원한 계절을 만끽한답니다. 그래서 아리조나 분들은 그 좋은 한 때의 경험으로 한 여름철의 끔찍한(?) 더위를 잊고 그 다음 해를 또 맞이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지역마다 꽤 많이 다른 날씨를 겪지만, 그 곳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제법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저는 이것을 ‘어울림’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어울림’이 인간네 삶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잘 어울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작게는 친구와 가족, 이웃, 넓게는 사회, 국가라는 울타리에서 우린 ‘어울림’의 소통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대 인간이라는 상대적인 어울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절대적인 자연에 비해.
그래서 우린 ‘어울림’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인 노력, 서로에게 한 발자욱 먼저 다가서는 내어놓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히10:24-25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페하는 어떤 자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는 말씀은 기독교인에겐 피할 수 없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어울림’의 소통을 잘 하지 못한다면, The rise of the planet the apes”의 영화에 나온 주인공 ‘시저’의 고통처럼, 황폐해진 우리네 삶의 단면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베델믿음지기 서목사 드림.
* 칼럼이라는 짧은 지면때문에 더 담아야 할 생각을 넣지 못했기 때문에, 저도 여러분과 글로서 ‘어울림’을 잘 소통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다음을 기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