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미국에서 지낸 지 만 20년, 누군가에게는 길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짧기도 한 시간들이지만, 늘 매년 한국의 명절들을(구정이나 추석 등) 생각없이 지날 때마다 마음에 ‘뜨끔함’을 느끼는 때가 많습니다. 그만큼 무뎌지는 제 마음을 채찍질하게 되는데요. 며칠 전에는 이웃한 교회의 목사님이 한국의 추석 당일이었던 그 날(음력으로 8월 15일이기 때문에 올 해는 9월 21일) 카톡으로 추석 인사를 보내 주셨는데요.
“목사님, 한국은 추석 명절이라고 하네요. 가족 분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막상 추석 인사를 받고 감사의 답장을 보내며, ‘내년에는 잊지 말아야지’ 라는 다짐을 해 보게 됩니다. 마침 김유진 선교사님이 한가위 밤에 드리는 기도문을 보내주셨는데요. 추석 날 밤, 잠을 못 이루시고 어렸을 때 추억이 깃든 조국 땅 추석의 정취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다짐했던 마음들을 적어 주셨습니다. 아래는 선교사님이 보내주신 기도문입니다.

한가위 밤의 기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올해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기쁜 한가위 추석 명절을 맞게 하십니다. 만월처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결실의 감사가 있으며 풍요로움이 있고 그리고 따뜻한 사랑이 있음을 또 다시 느끼게 됩니다.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의 애절한 울음소리와 초저녁 들창가 침대 머리맡으로 마구 부서져 내리는 가을밤의 화사한 달빛은 정든 고향을 저 멀리 이역 만리에 두고 온 내 가슴에 사무치는 향수로 다가와 텅 빈 가슴에 상흔(傷痕)만을 남겨놓고 홀연히 떠나갑니다.

정겹던 어린 시절, 누른 들녘을 활보하며 메뚜기 잡던 어린 시절, 뒷산에 따악, 따악 밤송이 무르익어 터지는 소리, 앞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연시, 홍시 감들, 초가집 굴뚝 연기 저녁 노을 속으로 사라지던 정경, 달리기 일등을 한껏 기대하며 가슴 조리던 가을 운동회, 해질녘 쑥대 꺾어 모깃불 피우고 등지고 서서 나누던 대화들, 김서방네, 박서방네, 가을 추수의 기대에 모두들 들떠 있던 훈훈한, 정겹던 그 모습들, 고향 산천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애틋한 추억을 간직한 보고픈 모습들, 멍석 위에 상 펴놓고 햇감자 넣어 끊인 수제비 이웃과 나눠 먹던 시절, 그 정다운 얼굴들의 그리움은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하고 중증 가슴앓이 되어 잠 못 이루며 온 가을밤을 뒤척입니다.

늦가을 나뭇잎들 떨어져 뒹굴고, 찬비 내린 후, 차가운 서리 내리면, 모든 진실을 다 드러낸 그 벌거벗은 앙상한 나무들 앞에 다시 서서 애향(愛鄕)을 등진 나그네의 초라한, 아니 허탈한 나의 가슴을 부둥켜안고 또 다시 고개 숙여 회개 기도 하렵니다.

내 인생 참으로 바보처럼 살아온 것을요. 그리고 다시 기도 드립니다. 주님께, 남은 인생이나마 이제 지혜롭게 살게 해 달라고요. 내가 죽기 전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 단 한가지라도 하고 눈을 감을 수 있도록요. 아울러 이 땅 위의 모든 것 마지막 될 날을 기억하며, 이 세상 지나가고 저 천국 가까울 날을 생각하며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포용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그리고 나의 죽음조차 미련없이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김유진(멕시코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