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목회 칼럼은 지난 새벽 묵상 본문이었던 출애굽기 마지막 장인 40장 34-48절의 말씀을 새벽에 설교했던 내용을 발췌해서 옮깁니다.

이 시간, 저는 출애굽기를 마치는 본문에서, 성경의 저자가 보여주길 원했던 본문의 의미를 묵상하며 이런 질문을 하나 생각해 봤죠. ‘왜 성경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담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부분에 성막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시는 방식(구름이 성막에 있으면 머물고 성막 위에 떠 오르면 이동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저는 그 답을 본문을 통해 찾아보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본격적인 출애굽의 여정을 앞에 두고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방식은, 예배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예배입니다. 성막은 출애굽 1년차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짓고, 출애굽 2년차 첫째 달 첫째 날에 성막을 짓는 역사가 마칩니다. 이후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에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다” 증언합니다. 이렇게 성막에 하나님의 임재가 실재적으로 임한 것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겠다는 뜻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예배 가운데도 이런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비록 출애굽 당시처럼 우리는 눈으로 그 임재를 볼 수는 없지만,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16절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증언하죠.
이는 마땅히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존재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리고 어떤 삶과 형편에도 예배를 드리는 삶이 되야 함을 의미합니다. 다만 문제는 성도인 우리가 어떤 형편에도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는 예배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시작도 과정도 끝도 예배가 되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 예배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부름받았음을 기억하고, 그 어떤 것에도 이 예배를 빼앗기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고 전심으로 예배하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방식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 순종입니다. 백성들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앞으로 갔고, 구름이 성막에 그대로 있으면 떠오를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기를 원하시는 것만큼만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성막이 머문 지역이 환경이 좋지 않고 물도 없고 힘든 지형이라 해도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 그대로 있는 동안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이 증언하는 이 구름의 메타포는 하나님의 뜻, 곧 말씀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을 우리 나름대로 자신의 해석을 붙이기 때문에 늘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게 되죠.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에도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 안에 주님의 위로와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내 의지나 뜻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최근 코로나는 역설적이게도 우리들의 믿음을 다시 한 번 뒤 짚는 것 같기도 합니다. 비록 코로나가 현실을 덮고 있어도 예배에 갈급하며 찾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건강에 대한 염려로 예배의 마음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어떤 형편에 있든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며, 하나님만으로 감사하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만큼 가는 것이 가장 복된 길이며, 이런 삶을 위해 기도하며 사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안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