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전인데요. 985 하이웨이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가 하늘에서 나무 상자 같은 큰 물체가 제 앞 차 쪽으로 날라오더니 앞 차 뒤 쪽에 있던 제 차 앞 유리 중간 윗 부분을 강타하고 튕겨 나갔습니다. 날라오는 것을 봤지만 피할 수 없었고, 그냥 부딪혀야 했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앞 유리는 사정없이 여러 갈래로 쭉 금이 갔죠. 실은 갑작스런 일이라 크게 놀랐지만 다행히 차선을 지켜 운전할 수 있었고, 다른 피해는 없었습니다. 속상하더군요. ‘아 조금만 천천히 갔으면 어땠을까, 앞 차가 계속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거슬렀는데 옆으로 피해갔으면 등등’ 여러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속상한 마음을 진정하며 집으로 가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가끔 고속도로에 타어어 조각들이나 어떤 차인지 알 수 없지만 떨어져 있는 물체들이 덩그러니 뒹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물체들을 피해가면 좋겠지만, 어떤 때는 피하면 더 큰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그냥 밟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이런 수많은 위험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안전할 수 있던 것도 참 감사할 일입니다. 갑자기 차 앞 유리를 강타하고 튕겨져 나간 나무가 만일 제가 운전하는 쪽으로 날라왔고 순간 그 물체로 차선을 변경했거나 눈을 잠시라도 감았다면 아찔할 뻔 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는데 차 유리가 그래도 바로 박살 나지 않고 버텨준 것도 감사했고, 차 위쪽에 떨어지지 않은 것도 감사했습니다. 만일 차 위쪽을 치고 갔다면 아! 천장이 움푹 들어간 차를 타고 다니거나 아니면 수리비도 꽤 컸을텐데 말이죠. 그나마 차 유리라 감사했습니다. 또한 제 차가 그 나무를 마침 피했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 그 나무 조각이 뒤에 오던 차를 쳤을텐데 그러면 벌어질 수 있는 사고가 너무 커서 생각만해도 큰 대형사고 이어질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제 차라서 감사했습니다. 또 제 앞 유리를 치지 않고 앞 차가 맞았다면, 저 또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니 어쨋든 제 차 유리를 쳤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했습니다.

멀쩡하던 하늘에서 큰 나무가 날라와 제 차를 덮친 일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차 앞 유리를 갈기 위해 정비소를 찾아야 하고, 돈을 지불하는 일등 실은 불편하고 힘든 일을 겪었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었고, ‘사고는 사고 잖아’ 라고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로 인해 마음 힘들어하지 말고, 더 조심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처럼 우린 살면서 내가 하지 않은 일, 또 원치 않았던 일들, 그래서 황당하고 억울한 일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을 때,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화를 내고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슬퍼하고 힘들어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죠. 그런데 ‘왜 주님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가 아니라 “왜 너는 아니라고 생각하지” 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일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게 됨을 믿습니다. 또한 믿음이 있다고, 신앙 생활을 잘 한다고 우리가 겪는 모든 사고나 질병이나 어려운 일들을 면제해 주는 ‘면제부’(위험을 격지 않게 해 주는 조건; 면죄부란 단어를 응용한 말; 면죄부는 16세기 로마 교황청이 대규모의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당시 백성들에게 면죄부를 팔았고, 면죄부를 내면 죄를 면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판매했던 천국 티켓)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폭풍우치는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에 주님이 계셨지만 제자들이 두려워 떨며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 쳤던 것처럼(마8:23~27), 우리가 염려하고 아우성 치는 삶의 현장을 주님을 믿는다고 그 어려움을 모면하게 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은 그 현장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고난의 파도를 겪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우리 모두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샬롬!!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