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평상시대로 이른 새벽 예배 교회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넣고 돌렸습니다. “뚜욱~” 늘 문을 열 때 전달되는 손의 감각이 아니었죠. 열쇠가 부러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문 고리 안으로 들어간 열쇠의 부러진 부분은 빼낼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열쇠를 갖고 계신 집사님 한 분의 도움을 받아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유분의 열쇠가 있어 괜찮지만, 실은 열쇠가 부러질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보지 않던 저로서는 참 당황했던 날이었고,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낯설었던 경험이라 말씀드린 것은 원래 제가 쓰던 열쇠는 교회 본당과 친교실을 겸해 쓸 수 있는 마스터 키라 일반 열쇠보다 두께가 더 두껍기도 했고, 실은 경험으로도 열쇠가 부러진 적이 없었기(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생각이 나지 않네요) 때문입니다.

요즘은 문을 여는 열쇠가 일반 키 뿐만 아니라 카드식, 전자식, 지문 인식등 문을 여는 다양한 방식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 어떤 경우라도 저처럼 열쇠가 부러지거나, 잃어버리거나, 문을 여는 번호를 잊는다면, 문을 여는 방법은 도저히 없죠. 물론 문을 부수고 여는 방법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보안 체계를 갖추고 철통같이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 해도 어떤 때는 허무하게 방어벽이 뚫리기도 합니다. 일전에 콜로니얼 파이프 라인(Colonial Pine Line Co.)을 공격한 해커들이 렌섬웨어로 공격해 전 국가적으로 손해와 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세상에는 존재하는 그 어떤 열쇠(보안시스템등)도 부러진 열쇠처럼 소용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는 완벽한 열쇠가 있습니다. 열면 닫을 수 없고, 닫으면 결코 열 수 없는 열쇠를 가지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22:22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예수님이 갖고 계신 열쇠는 그 어떤 문도 열 수 있고, 열린 그 어떤 문도 닫을 수 없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열쇠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절에서 자신에 대해 직접 증언하시길,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고 하십니다. 영어로는 the way, the truth, the life로 되어 있죠. 다시 말해 그냥 길과 진리 생명이 아니라 유일한 하나의 길이요. 유일한 하나의 진리요. 유일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을 만날 때 세상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하고 유일한 삶을 누리는 인생이 됩니다. 그것도 한 순간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삶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전히 불안하고 염려하는 일들이 있으신가요? 쌓여있는 문제의 더미들로 인해 걱정과 고통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실 때, 전능하신 주님이지만 문을 억지로 열고 우리 삶에 오시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죠. 여기 주님과 함께 먹고 사는 삶의 유일한 조건절은,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입니다. 문을 열어야 합니다. 주님은 문을 강제로 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문을 열면 그 인생은 세상 그 누구보다 복된 인생이 됩니다. 왜요? 주님이 함께 먹고, 함께 동행하시니깐요.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부러지지 않는 열쇠의 주인이시고, 그 생명의 열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여시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 되시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