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봐 나는 주인한테 다섯 달란트를 받았네” “아, 나는 두 달란트를 주셨어”
“그래, 나는 한 달란트야”
“주인이 우리에게 돈을 믿고 맡기셨으니, 주인이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도 맡기신 돈을 잘 관리하면 좋을 것 같아” “글쎄,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 너희도 알다시피 주인은 융통성 없고 고집 세고 너무 완고한 사람인 걸,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걸, 너희들은 알아서 해, 나는 받은 돈을 땅에 묻어 두고 주인이 돌아오면 그대로 돌려 드려야 될 것 같아”
교우 여러분, 위의 대화는 마태복음 25:14-30에 있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각자 달란트를 받은 세 명의 종이 주인에게 받은 것을 갖고 서로 대화하는 내용을 짧게 각색한 대화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그 돈을 갖고 장사를 해서 각각 두 배를 남겼죠.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앞의 대화 그대로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그대로 돌려 드립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다섯 달란트, 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고 칭찬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죠. 그렇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가 받은 달란트 마저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는 심판을 받습니다.
저는 지난 월요일 새벽, 이 본문을 갖고 말씀을 전하면서 주인에 대해 오해했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생각해 봤습니다. 아래는 당시 설교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는 주인의 은혜를 몰랐던 것이죠. 원래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긴 것은 종들에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28절을 보시면,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한 달란트를 뺏어 누구에게 주라 합니까? 열 달란트 가진 자죠.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원래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가 열심히 일해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기 때문에 열 달란트가 된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은 종들에게 달란트를 줄 때부터, 그들에게 일을 시켜 자신의 재산을 불리려 했던 것이 아닙니다. 열 달란트가 된 것은 주인이 그에게 베푼 은혜(선물)입니다. 물론 주인이 돈을 맡길 때 열심히 일해 벌면 너희들의 재산이 될 것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열심히 일한 대가를 주인에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을 처음부터 오해했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재산을 땅에 묻어 두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주인을 나쁜 주인이라 생각했죠). 주인이 돌아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한 것은 그가 받은 것으로 이윤을 남기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만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심히 일했는데도, 반 달란트, 아니 아예 주인이 맡긴 것을 다 잃었다 해도 주인은 그를 책망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요? 주인은 돈을 남기고 안 남겼는지 평가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맡긴 것을 얼마나 충성되게 일했는가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마음을 처음부터 오해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받아야 할 것 조차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죠.
오늘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있습니다. 재능, 물질, 시간, 자녀등등이 있습니다. 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이 달란트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남겼느냐, 얼마를 남겼는가가 아니라 그 받은 것을 갖고 어떻게 충성 되었는가를 보신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