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목회 칼럼은 어제 토요예배 때 말씀을 전했던 본문인 다니엘서 1:1-9절의 일부분을 싣습니다. 제목은 “뜻을 정하라”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본문에서 배우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 뜻을 정하는 믿음을 갖자’ 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니엘이 뜻을 정한 것은 형편이 좋아서…, (아닙니다)
“이런 결단을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어떤 기대를 해서…, (아닙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고 결정한, 여러 생각을 종합해서 내린 결단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결단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과 포도주로 더럽힐 수 없다는 순전한 믿음으로 내린 결단입니다. 물론 그는 자신에게 닥칠 위협과 죽음이 앞에 놓인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나, 결단으로 인해 자신이 죽음을 맞아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럽힐 수 없다는, 하나님께만 뜻을 정한 결단은, 오늘 이 시대의 교회 공동체와 우리 모두에게도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는 왜 이리도 타협하게 하는 것들이 많은지요. 본문이 말하는 왕의 음식과 포도주는 세상이 주는 달콤함과 욕망들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일과 분주함으로 예배를 소홀히 하게 하고, 교회나 이웃을 섬길 수 없게 하고, 사람들의 요구에 휩쓸리게 하죠. 뜻을 정한다는 말은, ‘선택하며 그 선택에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몸을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군대에서 받았던 훈련들이 다 힘들지만, 그 중 공포를 느끼게 하는 훈련이 있는데요. 막타워 훈련입니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라고 하는 11M에서 줄을 매고 떨어지는 거죠. 조교의 명령에 따라, 몸에 매인 줄을 의지해 뛰어야 합니다. 선택입니다. 물론 막타워에서 뛰어 내리면 줄이 몸을 잡아주고 있어, 땅에 몸이 닿기 전에 ‘탁’ 하고 걸려서 안전하게 땅에 착지할 수 있습니다. 네,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두려워 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선택은 이렇게 막타워처럼, 하나님이 붙드신 생명줄을 믿고 내 마음과 뜻과 생각과 몸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결단이 있는 믿음 되길 소망합니다.
교우 여러분, 그런데 하나, 하나님께 뜻을 정하는 것을 오해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뜻을 정한다고, 지금 현재 삶을 피해 교회나 기도원을 도피처로 삼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분명 왕을 섬기는 일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체적인 조건을 갖추기 위해 힘썼고, 지식도 지혜도 갖추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뜻을 정하기 위해 왕궁을 떠나야 겠다 생각했다면 차라리 어떤 계략을 세워 도망가는 일을 택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왕을 섬기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뜻을 정하고 그 뜻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세상을 피하지 않고, 믿음으로 세상을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바로 이런 결단입니다. 오늘 우리에겐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게 하신 직장과 사업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사람들의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그 곳이 하나님께 뜻을 정하는 믿음의 현장이 되야 합니다.
이런 결단이 있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