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미”
지난 주일(11일) 1부 예배 전, 전화가 올 시간이 아닌데.., 오정식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아! 어떤 소식일 것 같다’ 는 직감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너머로 “목사님, 방금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라고, 아내되는 미정집사님의 아버님인 故 장봉일 집사님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통화에서 간단하게 진행되는 몇 가지를 확인한 후, 주일 예배 후 저녁에 오집사님 가정을 찾아 그동안의 얘기를 들으며 성도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장미정 집사님의 부친을 뵌 것은 수 년 전입니다. 따님인 미정집사님이 개척 때부터의 맴버라 처음 집사님의 부모님을 뵈었을 때 그리 낯설지 않았고, 오랫동안 봐왔던 분 같았죠. 그리고 간간이 야외예배나 행사 때 뵙다가, 고인의 암 질병과 함께 투병 소식을 듣고 기도한 것이 약 2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고인은 몸이 회복되는듯 하다가, 다시 힘들어 지시는 것을 반복하셨다가 지난 4월 교회가 야외예배를 가졌을 때 마침 방문하셨죠. 그 때 식사도 잘 드시고, 전혀 아프신 분 같지 않아 너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동안 미정집사님은 고인인 아버지를 위해 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영혼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마음이셨는데, 얼마 전에 이렇게 물어보았다고 하네요.
“아빠, 아빠가 죄인인 것 알지?”
“그럼, 알지, 내가 하나님께 죄인인 것 알아!”
그 말에 미정집사님은 아버지의 구원에 대해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천하시기 전날 밤 토요일에 오집사님 내외는 평소 좋아하시던 통닭을 사서 고인의 집에 방문해서 함께 식사를 가졌는데요. 며칠 전부터 음식을 드시지 못하셨던 고인은, 그 날은 조금 드시고, 소다도 드시는 것을 보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주일 아침, 아내 되시는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고 달려가 고인을 뵐 수 있었죠. 그 때 마침 고인이 섬기셨던 교회의 목사님도 함께 방문하셨는데, 소천하신 고인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집사님의 주름이 펴졌어요”
고인은 이 땅의 모든 시름과 염려를 내려놓고 천국 길 가시는 그 길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주름마저 이 땅에 내려놓고 가신 거죠.. 저도 천국환송예배를 드리며, 천국 가신 고인의 주름 펴진 모습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이 정해진 것이죠(히9:27).
저는 아무래도 목사라는 직분을 감당하며 장례를 접할 기회를 갖게 되면, 늘 마음에 ‘죽음’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편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어떤가요? 우리는 이 땅에 그리 오래지 않는 동안 반드시 한 번은 만나게 될 단어가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웰빙(Well Being)만을 즐기는 삶이 아닌, 진실로 웰다잉(Well Dying)을 향해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의미하는 삶인가 돌아보고 계신가요?
그런데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기 위해 어떤 연구와 같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답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성도인 우리에게 복인 이유는 요한계시록 14:12-13절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베다니라는 지역에 있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슬퍼할 때, 예수님이 그곳을 방문하십니다. 그 때 마르다가 이렇게 말하죠.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했을 겁니다(요11:21)”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4-25)”
그렇습니다. 주 안에 죽음이 복인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믿는 자들의 죽음이 영원한 부활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름이 펴진 고인처럼, 이 땅의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영원한 부활의 그 영광에 우리 모두의 시름들을 내려놓고 갈 그 영원한 천국을 향해, 오늘도 주 예수를 믿는 소망 안에 살아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