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봤다!’ 칼럼 제목으로 쓰고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며칠 전에 몇 분의 교우와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요. 일리노이 주에 사셨을 때 산삼을 캐러 다니셨던 적이 있으셨다고 하고, 산삼을 잎의 색깔로 구분하는 것, 산삼이 발견된 곳은 산삼 밭일 경우가 높다는 등 여러 에피소드가 다양했습니다. 특히 힘들게 산을 돌아다니다가 산삼을 발견하는 그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마침 성경의 한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당시 사람들의 얘기에 회자됐을 만한 사건이었을 겁니다. 우연히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어느 밭에 보화가 숨겨진 것을 알게 된 거죠. 예수님이 사셨던 팔레스타인 땅은 지금도 고고학적 발견으로 고대 유물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여하튼, 이렇게 보화를 알게 된 사람은 자기가 갖고 있는 전 재산을 다 모아 그 밭을 샀다는 소식입니다.
지금도 한인 중 누군가 로또가 당첨 되서 ‘어떻게 했더라’와 같은 ‘카더라’ 얘기가 부러움이 되는 것처럼, 밭에 감춰진 보화 얘기는 어디선가 회자됐을 것 같은 얘기이고, 그렇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게 삶의 현장에서 알 수 있는 언어로 천국에 대해 알려 주신 것이죠.
그 날, 교우분의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감추인 보화 얘기가 떠 올랐던 것은 오늘 나(우리)의 삶이 이렇게 산삼을 발견한 것처럼,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처럼,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갖고 사는가’ 라는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예수님의 비유로 돌아와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고 보화가 감춰진 밭을 샀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보화가 자신의 모든 재산의 가치보다 더 비싸고, 좋은 것이었기 때문이죠. 이 비유를 다시 신앙의 관점(천국에 대한 소망)에서 보면, 이 보화는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삶의 모든 재산(돈, 명예, 업적, 자녀 등)보다 더 소중한 분이시기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으면, 그 삶이 곧 천국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죠.
‘20 …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1:20~21)’
오래 전 저는 ‘어떻게 바울은 죽음도 유익하다고 할 수 있지, 어떻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지?’ 와 같은 질문으로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의 삶도, 죽음도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이니깐요.
교우 여러분, 이제 다가오는 2026년에도,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걸어가는 삶, 날마다 보화를 얻는 기쁨을 이렇게 외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님 봤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
1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 주위에 알리며 외치는 소리다. 이렇게 외치는 것은 발견의 기쁨과 함께 산삼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삼이 있을 수 있기에 주변 동료들을 부르는 구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