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칼럼에 이어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던지시는 가장 위대한 질문 중 두번째 질문인 관계적 질문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 질문은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인 가인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가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Cain, Where is your brother, Abel?)”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세기 4:9)”

여러분이 아시듯 아담이 낳은 자녀 중에 가인과 아벨이 있습니다(창4:1-2).
그 중 아벨의 형인 가인은 직업이 농사하는 자였고, 동생 아벨은 양치는 자였습니다. 어느 날 둘은 각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죠.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리고(창4:3),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십니다(창4:4-5). 이 일로 가인은 분노하게 되죠. 물론 하나님은 가인의 분노를 아셨기에 그가 죄를 범하기 전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창4:7)”는 말씀을 주셨죠.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았지만 개의치 않고 그의 동생인 아벨을 죽입니다(창4:8). 이 일이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입니다.

이 살인 사건 이후 하나님이 가인에게 물으신 질문이 “가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하나님이 가인이 한 일을 몰라 아벨이 어디에 있냐고 물으신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칼럼에 썼던 것처럼, 앞의 창세기 3장에서도 아담이 범죄한 후 그가 숨었을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셨지만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냐고 물으셨던 것처럼, 본 질문에서도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아셨지만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냐고 물으십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가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냐고 물으실까요?
이 질문은 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관계적 질문).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물으시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동생을 죽인 가인은 이 질문에 ‘내가 동생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냐고,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냐고’ 하나님께 항의하며 분노하죠.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패역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그 분노의 화살을 하나님께 돌리죠.

그렇다면 오늘 이 질문 앞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떤 관계인지, 우리의 일터와 직장과 모든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는 삶이 되야 합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떤 계명이 크니이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요, 둘째도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22:34-40)”고 하시며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질문과 답인 창세기의 아담과 가인에게 향한 질문과, 율법사의 질문(율법 중에서 큰 계명)에 두 계명으로 답하신 예수님의 답은 그 본질적인 의미에서 같은 질문과 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적 질문인 ‘너는 어디에 있니?’ 라고 물으실 때, 우리는 주님의 답과 같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적 질문인 ‘네 아우 아벨은 어디있니?’ 라고 물으실 때, 우리는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 본 창세기의 질문과 율법사에 대한 주님의 답은 이렇게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질문과 주님의 답을 마음에 새기며 더욱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이 되시길 주님 안에서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