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은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네 가지 유형의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서쪽 지중해에서 시작되는 평야지대, 그 다음이 중앙구릉지대(쉐펠라), 중앙 산악지대, 그리고 요단강 계곡 지대로 이어집니다. 바로 그 지형중에서 산악지대 오른쪽, 그리고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며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언뜻 보기에 광야는 태고부터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신비로움, 그 자체의 위엄을 자랑하듯 펼쳐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쪽엔 전 국토의 절반 가량을 세모꼴로 이루고 있는 네게브 사막의 신광야, 바란광야, 시내광야가 있고, 중앙 산악지대를 걸쳐 사해와 맞닿는 지역까지 이어진 유대광야는 믿음의 선배들이 그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던 흔적을 숨겨 둔 곳입니다. 이번 비전트립(2023년) 에서는 유대 광야를 거쳐 여리고로 가는 길에 정해진 일정 중에 잠시 광야에서 내려 그 땅을 밟게 됐는데요. 마침 비가 조금씩 내리는 중이어서 뜨거운 광야 체험은 아니었지만, 구름 사이로 비추는 빛, 구름을 배경 삼아 펼쳐진 무지개 등, 광야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하면서 광야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다음에 이 땅을 다시 찾을 기회가 있다면, 꼭 광야를 걷고 싶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지냈던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걸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만 벗어나면 눈 앞에 황량하게 펼쳐진 흙 갈색의 광활한 땅을 만나는 곳이 유대 광야입니다. 그나마 광야는 우기철(보통 10월에서 그 다음해 3월)에는 땅 위로 듬성듬성 솟아 있는 풀들을 볼 수 있지만, 건기에는 그나마 있던 풀도 숨어버리죠. 그래서 광야의 푸르름을 보는 것은 매우 제한된 시기만 가능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확인해 볼 수 있는 이 유대 광야는 바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이었고(삼26:1-3), 예수님이 사십일동안 시험 받으셨던(마4:1-11) 장소입니다. 침례 요한은 이 곳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던 현장입니다(마3:2).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죠(마3:3). 저희 비전트립 맴버는 유대 광야의 한 지점에서 5세기 말엽에 세워진 성 조지 수도원(The Monastery of St. George) 을 바라보고, 물건을 팔고 있는 베두인 족속과 와디 켈트 지역도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에 조금 더 자세히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은 이 지면에서는 잠시 광야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광야를 지칭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מִ֭דְבָּר )’입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 같다는 말은 실제로 삶이 너무 힘들고 곤고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광야는 척박하고 메마른 지역,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을 떠올리는 단어입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매우 고통스런 현실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후 광야에서 ‘먹을 것을 달라고, 물을 달라고, 왜 애굽에서 죽게 두지 이런 곳에 이끌고 와 죽이려고 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소리 친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광야라는 단어가 말씀을 의미하는 단어인 ‘다바르’에서 나온 단어라는 것입니다. 다바르는 말씀을 듣고 청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데, 바로 이 광야가 말씀이 나오는 장소이며, 말씀을 듣고 순종함을 배우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인생의 광야를 떠 올리게 됩니다. 삶의 굴곡이 없고, 평탄할 때는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광야에서, 광야를 통해서 깊이 만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또, 이 ‘다바르’라는 단어는 지성소를 의미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시편28:2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이렇게 고백할 때 쓰인 ‘지성소’라는 단어가 바로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에서 파생된 ‘드비르’라는 단어라는 점은 또한 우리를 광야의 깊은 의미로 이끌어 줍니다.
바로 광야가 하나님의 지성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만나는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다바르라는 말은 역병을 의미하는 ‘데베르’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우리는 역병과 같은 파괴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광야의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시간입니다.
<비전트립 일지는 이스라엘, 요르단 땅에 담긴 성서의 땅과 그 의미를 배우는 믿음의 여정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