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

“무례”  

 

지난 주였습니다. 아침에 짬을 내 fitness center에 운동을 하러 막 파킹을 할 때였습니다.

차 뒤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순간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한 운전자가 자신의 차를 타면서 문을 열 때, 제 뒷문을 ‘쿵’ 하고 친 겁니다(그는 후면주차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 뒷문을 친 거죠). 급하게 내려 뒷문을 살펴보니 별 이상이 없어 괜찮다고 하려고 하는데, 상대방 운전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약간의 인상을 쓰며, “I want to leave over there.” 말만 남기고 휙 하니 떠나 버리더군요.

저는 그 말에 정신이 멍한채로 급히 빠져나가는 차를 서서 봐야만 했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무례하지, 남의 차를 치고도 어떻게 그냥 갈 수 있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에 한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스와니(City of Suwanee)의 한 도로에서 있던 일입니다.

제 차가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들어가는 라인에 차가 나오려는 겁니다. 상대방 차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역주행을 한 것이죠.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경적을 울려(honk)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죠. 그런데 우리 말에 적반하장(뜻: 도리에 어긋난 자가 도리어 스스로 성내고 업신여긴다는 것을 비유한 말) 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행동으로, 상대방 운전자는 차를 뒤로 몰면서 제게 연신 손가락 욕을 하며 화를 내더군요. 너무 어이없는 심정으로 상대방 운전자를 쳐다보는데, 심지어 그 차 안에 아이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보며, 차마 그를 향해 맞서 소리도, 화도 내지 못한 채 그냥 제 길을 가야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렇게 2주 동안 연속으로 겪은 무례한 일이지만, 솔직히 이런 일들이 제 감정을 힘들게 하거나 분노로 끓게 하거나, 쌍욕을 하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당시 제 감정이 몹시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곧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제가 해야 할 일이 방해 받은 것 또한 아닙니다.

 

그럼에도, 앞의 두 무례한 일들은 제게 여러 의미를 주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심하게 무례한 일을 당했던 그 순간, 어떻게 평안한 마음을 곧 지킬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에 ‘이 보다 더 심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먼저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죠.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크리스천이지만,  오고 가는 일에 사고를 겪을 수 있고,  그 외에도 질병이나, 사람들에게 받는 원치 않는 여러 감정들(미움, 질투, 시기, 외면 등) 또한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 때, 사람들로부터 이런 수많은 조롱과 멸시, 비난을 받으셨죠.

이렇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어’ 라고 마음 먹은 후, 바로 다음은 제 마음을 흔드는 감정을 사단의 권세에 넘겨주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벧전5:8, 마24:24, 살전5:16-18).

저는 주님께서 마음을 지켜 주시길 기도하며, 제 자신을 향해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것을 선포하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 것이죠. 그리고 상대방을 향해 ‘그럴 수 있어, 저 사람이 바빠서 그랬겠지, 무슨 힘든 일이 있었나 봐’ 와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니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할까요!

 

여하튼, 저는 화를 안내는 타고난 인내의 사람도 아니고, 성인군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늘 연약하고 넘어지고, 화도 내는 부족한 인생입니다. 그럼에도 앞의 두 경우를 통해 어떤 무례한 일에도 조금씩 주님의 마음을 배워가려 힘썼던 경험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딤후3:1-5) 마지막 때의 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억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이 시대를 향해 깊이 찌르는 말씀의 권위 앞에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 중 하나도 빠짐없이 일어나는 이 사나운 시대에, 성도로서 우린 진실로 경건의 능력을 갖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떤 상황에도 경건의 모양에 만족하지 말고, 경건의 능력을 지켜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경건의 능력의 사람이 되기 위해 말씀을 더욱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되길 바랍니다(딤후3”16-17).

 

주님께서 이 사나운 세상을 더욱 담대하게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성도로서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더욱 은혜 주시길 소망하며, 기도 드립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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