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전인데요. 저희 막내 딸, 민주를 픽업하는 차 안에서 갑자기 툭 던지며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빠, LGPE(Large Group Performance Evaluation) 알지?”
“응 그런데..”
“내가 LGPE Orchestra 하는데 돈을 줬어”
“무슨 말이야?”
“오늘 학교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쿠키랑, 물 같은 것을 파는데,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돈을 줬어”
자! 이제 이 얘기가 어떤 의미인지 이 정도 대화를 갖고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민주의 말은 지난 주 학교에서 여러 학교들에서 참여하는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렸던 날, 사람들이 먹기 위해 구입하려는 물과 쿠키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돈을 주었다는 얘기를 했던 겁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대화입니다.
“그럼 한 20불 정도 주었니?” “아니 조금 더”
“그럼 30불”, “조금 더”
“그럼 50불”, “응 50불 주었어”
당시 막내와의 대화를 간단하게 썼지만, 민주는 이 말 외에도 왜 50불인지 제게 설명하느라 애를 쓰더군요. 그리고 저는 얘기를 다 듣고 “그래 잘 했어”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물론 마음에는 민주의 행동이 기특하고 좋기도 했지만, 왜 돈을 쉽게 쓰는가 하는 마음도 들어 조금은 속상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보다 주님이 보시면 얼마나 좋으셨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 한 켠이 뭉클합니다. 실은 막내에게 50불은 너무나 큰 돈이거든요. 저희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용돈을 안 주기 때문에, 아이는 갖고 있는 돈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50불이면 아이에겐 꽤 큰 돈인데요. 어떻게 갖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에겐 그 돈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 날, 아이의 낭비(?)가 마음 한 켠에서 뭉클했던 것은 성전의 헌금함에 두 렙돈을 넣었던 과부를 칭찬하셨던 주님의 마음이 오버랩 되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장 41~44(눅21:1~4)에 보면, 어느 날 주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을 하는가 보고 계셨습니다. 그 때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죠.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단다. 사람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 넣었으나 과부는 가난한 중에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단다.”
주님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헌금의 액수로만 따지면 렙돈은 당시 화폐 단위로 가장 작은 단위였죠. 당시 일일 노동자 임금을 100불로 가정했을 경우, 렙돈은 약 1불이 채 안되는 돈입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 모두가 더 많은 헌금을 했고, 돈의 가치로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마음의 가치를 보셨습니다. 마음의 가치란, 얼마나 과부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렸는지를 주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국의 탐험가이며 선교사였던 데이빗 리빙스턴은 어렸을 때, 아프리카 의료사업을 위해 헌금하는 자신이 그 바구니 위에 올라가 ‘저는 바칠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 삶을 아프리카를 위해 몽땅 바칩니다’ 라고 헌신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결단한 대로 평생을 주님께 헌신합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주를 위해 나눔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눔의 가치는 돈의 액수의 크기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입니다. ‘시작하는 마음!’
우리 모두에게 이런 나눔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