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목회 칼럼은 지난 2월 중순경 새벽에 말씀을 전했던 본문인 “눅12:35-38” 의 설교 내용을 요약해서 옮깁니다.
한 종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며 늦은 밤까지 잠을 청하지 못했죠. 마침 그 날 따라 주인은 초청받은 혼인 잔치에 갔다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종은 주인이 오기 전까지는 마음껏 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늦게까지 등불을 켜고 지켰죠. 그러다 주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주인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의 결론을 37절에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여러분.. 저는 이 구절을 묵상하는데 이런 질문이 생각납니다. 종들이 주인을 늦은 밤까지 기다렸다 영접한 것은 당연한데 말이죠. 왜 주님은 주인을 영접한 종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리고 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복이 있다 하신 다음의 구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자 이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늦은 밤 돌아 온 주인이 잠을 청하러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허리에 띠를 띠고(옷을 갖추어 입었다는 것이죠), 종들을 자리에 앉힙니다. 그리고 종들을 수종듭니다(종들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누가요? 주인이요. 완전히 뭔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종들이 늦게까지 수고했다면 주인은 그 수고에 고마워 특별히 품삯 외에 보너스를 더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보너스가 문제가 아니라, 주인이 종들을 앉히고 수종듭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주님은 역설적인 비유를 말씀하실까요?
자 그래서 그 다음의 구절을 봤습니다. 38절에,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여기 이경은 밤 9시부터 12 시까지이고, 삼경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인데요. 종들은 이 때까지 주인을 기다렸죠. 그리고 39절에,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자.. 이 구절을 보면, 주인이 왜 종들에 감사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이 없을 때 도둑으로부터 주인의 재산과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과 보호 장치는 종들입니다. 만일 종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면(주인 오기 전에 집을 비우거나 잠을 청하거나) 집은 언제든지 뚫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인은 집을 비웠을 때 집의 모든 소유를 지키는 권한을 종들에게 위임한 것이죠. 그리고 종은 주인의 명령을 순종해 그 역할을 다하고 집을 지켜낸 겁니다. 이런 이유로 주인은 종들이 고마웠고, 종들의 수고를 위로하고 감사를 표했던 것입니다. 실은 주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 이유는 40절에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을 기다려 복을 받은 종들처럼, 늘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은 본문의 종들이 한 것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밝히는 삶입니다.
허리에 띠를 띤다는 것은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준비하는 것이고, 등불을 밝히는 삶은 세상의 죄와 어둠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내는 삶입니다. 그래서 어떤 도둑들이 들어와 교회 공동체를 공격하고, 가정을 해치고, 우리들의 믿음을 흔들 때에도 믿음으로 담대히 맞서 싸우는 삶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키며, 주님이 오시는 영광에 참여하는 모든 교우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