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여기에 책을 읽고(1)”
* 아래 글은 10년 전, 교회 주보에 실었던 칼럼입니다.
한 달 전, 크리스천 타임즈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읽으신 책 중에서 인상 깊었던, 추천할 만한 책 소개를 하나 해 주시겠어요?”
실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책 소개였기 때문이지요. 목회자가 책 소개를 거절하면 책도 안 읽는 목회자(?)가 될 것이고, 그렇다고 그냥 쉽게 서재에 꽂혀 있는 책 아무거나 한 권을 소개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25년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이 났습니다. 책은 미우라 아야꼬가 쓴 ‘길은 여기에’ 라는 책인데,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글로 담은 소설입니다. 제겐 당시 매우 감명 깊게 읽어서 늘 가슴 한 켠에 남겨진 책이었기에 서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기독교서점에 주문했고, 3주를 기다린 후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책이 왔으니 읽어야 했습니다. 우선 조금 분주한 사역들을 마친 후가 좋을 것 같아 부흥회를 마친 후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은 제게 25년전의 그 감동을 다시 전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선 원고 재촉을 피하기 위해 크리스천 타임즈에 독후감을 보내 놓은 후 생각해 봤습니다. 책의 내용을 신문에만 보내 놓기 보단 조금 더 보완해서 교회 교우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목회칼럼의 지면에 크리스천 타임즈에 기고한 내용을 소개하며 책 읽기 감상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아래는 기고한 내용을 요약, 보완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이었고,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년 시절 나는, 미우라 아야꼬가 쓴 ‘길은 여기에’ 책에서 주인공이 겪었던 전쟁후의 고통, 13년간의 폐병과의 싸움, 그를 사랑했던 남자, 그리고 죽음과 삶을 통해 기독교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책과 함께 진지하게 탐구했었다. 그것은 마치 매우 진한 블랙커피를 마신 후 오랫동안 입가에 맴도는 진한 여운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내 서재에 여전히 꽂혀 있어야 할 이 책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세월이 꽤 많이 지났다. 이사를 제법 많이 해서 없어진 것일까? 늘 이사짐을 꾸릴 때마다 아무리 무겁고 부피가 나가도 책박스만큼은 직접 챙겼기 때문에 어딘 가에 있어야 했을 텐데 아쉽게도 책은 세월의 먼지와 함께 어딘 가에 떨어진 것 같다.
다시 꺼내 든 책 ‘길은 여기에’ 는 이렇게 다시 내 가슴에 찾아왔다.
책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을 텐데, 이번엔 읽으면서 내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폐병으로 고통가운데 약혼자와 파혼을 해야 했고, 그 길에서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순간, 그렇지만 죽지 못하고 한 남자의 지고 지순한 사랑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나중엔 그 사랑했던 남자의 죽음 앞에 선 한 가냘픈 여인의 울음, 그리고 다시 찾게 된 사랑까지 책은 일인칭 주인공 화자의 담담한 얘기를 담아내고 있다. 때론 가슴 아픈 애절한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듯 써 내려간 만남과 사랑을 통해 저자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되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마치 얘기는 어느 따뜻한 봄, 밤하늘 별 아래 모닥불을 피워놓고 친한 친구와 얘기하듯 편하게 전해진다.
그러면서 책은 곳곳에 저자의 독백과 말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책에서 주인공인 그녀는 기독교인이 되기 전 자신을 목적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취급했다. 여지없이 그는 기독교 신자를 비판했다.
“크리스천이란 위선자예요. 깨끗한 척하고…”
그 후 그녀를 사랑했던 마에까아 다다시라는 청년이 삶에 대한 목적도 없고 허무하게 살아가는 그녀 앞에서 돌로 자기 발을 내리 찍으며 호소하는 그 음성에 마음을 연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크리스천 자체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모멸적인 감정을 내버릴 수는 없었다고 얘기한다.
소설에선 이 다다시라는 청년이 아야꼬의 병 간호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보내는 편지와 엽서를 통해서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결국 그는 질병으로 먼저 죽는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독백으로 얘기한다.
“나는 여기에서 남을 위로하는 일은 자신을 위로하는 일이고, 남을 격려하는 일은 자신을 격려하는 일이라고 하는 평범한 사실을 몸소 깨달었던 것이다”
“ ‘하나님, 주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기도하고 스스로 타이르며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털어 놓는 일을 그만두었다”
(다음 칼럼으로 이어 집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