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창립 11주년의 마음 ”

“민주야, 아빠가 오늘 유스 게임 나잇에는 라이드를 못 해 주니깐, 엄마나 오빠가 해 줄 거야. 아빠가 오늘 funeral service(장례식)에 가야 하거든.”

지난 9월 30일(금) 시간이 맞지 않아 민주에게 양해를 구하며 했던 말입니다.
이 말에 민주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슬프다, 죽는 것이~”
“그래. 그런데 아빠도 죽어. 누구나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지. 그 때는 하나님만이 아시거든” 저는 잠시지만 아이와 죽는다는 것, 예수님을 모르고 죽은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지 등. 제법 심오한 질문에 답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장례식 일정이 있어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실은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채 예순(60세)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주님의 품에 안긴 고인의 죽음과 직면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슬프지 않았습니다. 8년 동안 뇌종양으로 싸워야 했던 자매님이셨지만, 마지막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 힘이 닿을 때마다 찬양하며 기도했던 자매님의 삶, 그 고통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감사하셨던 그 마음이 예식을 드리는 내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 땅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엄마와 아내를 주님의 품에 보낸 가족들의 애통과 눈물에도 천국에 대한 소망과 기쁨이 담겨 있음을 보며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고, 믿는 자의 죽음에 대해 다시 소망을 갖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 창립 11주년이 되는 오늘,
제가 죽음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낸 것은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언젠가는 만나야 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 ‘오늘 내가 죽음을 앞두고 하루를 산다면 어떻게 살까, 분명히 모든 시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겠지’ 하는 마음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누구라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그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매우 아이러니한 것은, 모두가 이런 마음이지만 실제 우리는 당장 눈 앞에 죽음이 닥치지 않을 것처럼 여기며 살 때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았으니까, 내일 하루도 당연하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오늘 하루는 당연한 하루의 삶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삶은 하나님이 살아가게 하신 은혜의 날입니다.

저는 바울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는 말씀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되어 붙잡힐 것을 알았고, 사람들의 만류도 있었지만, 가기 전 3년동안 눈물로 기도하며 사역했던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당부하며 고백했던 말입니다.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저는 그의 고백에서 매일 매일을 생명을 불태우며 살았던 그의 삶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루를 살아도 교회를 위해, 하루를 살아도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께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 생명을 다해 수고했던 그의 마음. 저는 이 마음이 앞으로 우리가 다음 세대를 향해 짊어져야 될 십자가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깊이 다가와 박힙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건축은 단지 우리의 예배 환경을 좋게 하고, 교인들을 더 많이 오게 하고, 교회가 이렇게 건축을 잘했다는 말을 들으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네! ‘결코 아닙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 교회 건축이 안 되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이 일을 그냥 오늘 하루, 감사하며 감당하는 것, 주님은 그것으로 기뻐하심을 믿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교회 건축을 하게 하시는 것도, 다음 사역의 길을 준비하게 하시는 것도 오늘 하루 감당하는 은혜임을. 샬롬!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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