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도 함께 하신다”
마치 광야에 놓인 것 같습니다.
3,400년전,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애굽에서 당시 430년간 노동으로 착취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들어갑니다. 원래 그들의 목적지는 가나안(팔레스타인)이었으나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이 불신과 원망으로(민13:33~14:3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보고한 후에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두려움과 원망으로 가득 찬 광야의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내와 사랑으로 인도하셨고,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십니다(출12:41).
최근 우리 베델믿음교회는 마치 광야의 현장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의 이전과 관련된 여러 일들, 주일에는 Seckinger High School 에서, 주중에는 선교관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일들, 그리고 건축의 비전등, 여러 일들이 광야에 놓인 막막한 심정, 답답함이 수시로 밀려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일들을 인도하고 계시며, 또한 교회를 부르신 그 뜻을 따라 모든 선한 일로 채우시며 하나님의 강한 군대로 세움 받기 위해 인도하고 계십니다.
현실적으로 광야를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늘 끊임없이 광야에서 원망만 늘어 놨으니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매일 하늘에서 주시는 만나를 먹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매일 경험했지만, 그들의 말과 태도는 늘 원망과 불평이었죠. “물이 없어요. 배가 고파요. 우리가 애굽에서 죽는 것이 여기 광야보다 더 나을 뻔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떤가? 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한다 해도, ‘광야 같은 삶을 견딜 만 하다고,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광야의 삶은 모두가 원치 않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이 광야라는 단어의 원어인 ‘미드바르(מִ֭דְבָּר)’ 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척박하고 메마른 지역,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고 도저히 살 수 없는 광야는 말 그대로 매우 고통스런 현실이지만,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이 광야라는 단어는 흥미롭게도 말씀을 의미하는 단어인 ‘다바르(דָבַר)’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다바르는 말씀을 듣고 청종하다는 의미를 갖는데, 바로 이 광야가 말씀이 나오는 장소이며, 말씀을 듣고 순종함을 배우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단어는 말의 내용이 성취되고 열매를 맺는 행위를 포함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광야의 현장은, 그 말씀이 광야의 삶에서도 성취되는 사건이 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도, 교회에 놓인 광야도, 평탄할 때는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광야에서 깊이 만나며, 그 광야에서 말씀을 듣고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앞에 놓인 광야는 새로운 변화를 향한 모멘텀입니다. 그 모멘텀의 현장에 예배를 돕는 도우미, 목장 식구들, 교육부서를 담당하는 선생님들, 담당 교역자분들, 찬양팀, 주차팀, 안내팀, 그 외도 많은 봉사의 손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할 때, 놀라운 은혜의 강에서 우리는 함께 힘찬 노를 저어가게 될 것입니다. 비록 그 강에는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렵지 않은 것은 주님이 그 곳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하며 교회가 세워가는 비전에 함께 해 주십시오. 분립개척과 함께 하는 베델믿음교회 3기 사역에 위대한 일꾼이 되어 주십시오. 이 일에 우리 모두를 도우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