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_textblock textblock_styling_align=” textblock_styling=” textblock_styling_gap=” textblock_styling_mobile=” size=” av-desktop-font-size=” av-medium-font-size=” av-small-font-size=” av-mini-font-size=” font_color=” color=” id=” custom_class=” template_class=” av_uid=’av-kgbmi2fk’ sc_version=’1.0′ admin_preview_bg=”]

성남시 분당(을) 지역구로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전하진 의원의 보좌관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단속되자 해당 경찰관에게 막말을 하고, 단속을 무마하려 했다는 이른바 ‘갑질’ 의혹이 제기돼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26일, 한 방송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후 8시40 분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불법 유턴을 하던 A모씨(41)는 교통 범칙금을 물리려는 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에게 “나는 4급 보좌관이다”며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 막말을 한 것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매체는 ‘전하진 의원의 보좌관인 A모씨가 막말을 하기 전 경찰관에게 자신의 공무원 신분증을 보여주며 봐 달라고 부탁했지만 경찰관이 이를 거부하자 태도가 바뀌었다’고 경찰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어 매체는 전하진 의원의 A모씨 보좌관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권한과 직위를 악용해서 억압하거나 강압적으로 한 적이 없습니다. 서장 이름을 물어보고 그런 걸 하긴 했지만, 이의제기한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답변을 못 들었기 때문에 윗사람과 통화하려 했던 거고….”라고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A모씨는 교통 범칙금 6만원에 벌점 15점을 처분 받아 이에 대해 이의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굿 타임즈(2015년 3월 27일 기사 발췌.)

상기 기사는 국회의원 보좌관이 교통법규를 어긴 사건이 갑질 논란으로 회자되어 뉴스와 방송에 보도된 내용의 기사입니다.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기사를 보면서 보좌관이나 경찰의 입장이 물론 상반되지만, 사건의 실체보다 갑질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는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에게 경찰이 티켓을 발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체보다는 사건이 진행된 과정에서 막말 논란과 부당하다고 이의신청한 것이 부각되며, 곧 실체보다 다른 내용들이 더 드러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세상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해서 예를 드는 것이 무색합니다.

물론 어느 사회나 조직은 갑과 을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래서 ‘힘있는 갑과 연약한 을, 지배적 갑과 피지배적 을, 우월적 갑과 열등한 을’ 등등 이 관계를 표현하는 수식어들이 우리들의 일상을 파고들며, 어느덧 그 구조의 트랩에 살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갑과 을로 표현되는 이 엄청난(?)관계를 거꾸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오늘 제 글의 본질은 바로 이 갑과 을의 관계를 뒤집는 역설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 역설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갑이 을이 된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갑이 죽은 사건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갑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최고의 갑되신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입니다. 그 죽음을 앞 둔 유월절 만찬에서는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너희들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향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고, ‘을’ 인 모든 죄인들인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저는 이번 사순절에 꽤 많은 분들이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 경제적인 문제, 질병의 문제, 심지어 소소한 문제로 심화된 부부싸움까지, 그리고 우리를 염려케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이라서 이렇게 힘든가?’ 만일 그렇다면 이 고난은 주님의 부활을 향해 걷고 있는 고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바울이 겪었던 고난에 대한 고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저는 믿습니다. 이 사순절의 기간, 우리가 내세우고 싶은 갑과 같은 내 뜻과 생각과 욕심들이 죽고, 진정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품을 때 우리 주변의 을이 사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죽어야 사는 진리를 부활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오늘 칼럼은 2105년 사순절 주일에 주보에 실었던 글을 오늘의 시점으로 옮겼습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