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평안하시지요?
새로운 한 주간의 일정을 위해 오늘은 휴식하시는 월요일을 보내고 계시기를 희망해 봅니다. 예배의 진정성을 되짚어 보게 해 주신 설교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저는 한 주를 시작합니다. 미갈이 다윗의 아내로 불리지 않고, ‘사울의 딸’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세 번이나 외면 당하는 모습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지나 온 오랫동안의 예배 태도를 돌아보아도 미갈보다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초신자 시절 한동안은 예배에 관해 무지 했기에 가벼이 여긴 예배였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때에는 구직을 위한 연구와 고민이 예배를 방해 했었고, 자녀 양육으로 인해 불안할 때는 여전히 근심과 불안함을 품은 채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서나 겨우 행복한 예배를 드릴 줄 알게 되며 춤추는 다윗처럼
즐겁고 행복한 예배를 한동안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주일에도 여러가지 현안을 다루어야 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예배는 또 서서히 데미지(damage) 가 나기 시작 했습니다. 제 인생의 예배 여정에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계수해 보면 정말 뜨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예배 드린 날 수는 너무 적었습니다. 마치 월급 명세서에서 수많은 공제액 떨어져 나가고 얼마 남지 않은 실수령액을 받아 쥐고 허탈한 샐러리맨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윗 보다는 미갈을 더 닮았다는 생각에 목이 메어 왔습니다.
말씀 들으며 다시 다짐했습니다.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으리라”
마리아의 자리에 이제 앉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실 엄청난 일이 아니라면 저는 예배의 자리를 택할 것입니다. 다시 묵상하고 다짐하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샬롬!”
위의 글은 저희 교우 중에 한 분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실은 보내주신 글을 읽고 제 자신이 ‘예배로 사는 삶’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도 정작 나는 ‘예배의 삶을 살았는가’ 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묵상이었고, 감동이 되어 양해를 구하고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배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았고, 또 어떤 예배를 드렸는가를 늘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은 예배의 시간, 예배의 삶이 너무나 소중하면서도 지난 설교 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예배를 ‘액땜용 예배’ 로 전락시키거나, ‘회개 처리장’ 쯤으로 여기는 태도는 얼마든지 갖게 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내 기준에 맞춘 ‘맞춤형 예배’ 로 만드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예배의 태도로는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예배의 자리, 삶으로 나가야 할까요?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죠(요4:23-24) 네, 자주 강조하지만,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결단해야 겠죠. 그 중에서 칼럼의 지면상 하나만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편 100:4절입니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이 구절의 고백과 같이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감사함으로 예배의 문을 열고, 찬양함으로 주님을 높이는 예배자, 이런 예배자가 되기를 결단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예배의 모습, 삶에서 감사와 찬양이 있는가 매일 점검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 이런 결단을 통해 더욱 주님과 친밀한 만남을 갖는 예배자의 삶이 되실 것을 소망합니다.
베델믿음지기 서성봉목사 드림